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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 우물’과 ‘교토삼굴’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3.04.10 10:30 수정 2023.04.10 11:01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우리 속담에 ‘우물을 파더라도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그 일을 제대로 성취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일에 꾸준히 매진하라는 뜻이리라.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하다 보면 어떤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여 그 일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므로, 어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우물을 팔 때 하나에만 매달리라는 의미일 것이다. 

대기만성형인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한 우물을 팠기 때문이라는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또,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달인’이라는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그 비결을 한 우물을 파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와는 다른 취지의 말도 있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인데, 이는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뜻이다. 토끼가 굴을 팔 때, 튼튼하게 한 개의 굴을 파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세 개의 굴을 판다는 것이다. 만약의 경우 닥칠 위험에 대비하여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여야 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속담이다. 

만약 하나의 굴만 파 두었다면 그 토끼는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세 개의 굴을 파 둔다면 위험이 닥쳤을 때 그중 하나를 선택하여 자신을 숨김으로써 위험을 피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와 비슷하게, ‘팔방미인(八方美人)이라는 말도 있다. 팔방(八方)은 '모든 방향'을 의미한다. 동서남북이 사방(四方)이고, 동남, 남서, 서북, 북동의 방향을 첨가하면 팔방(八方)이 되니 그야말로 모든 방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이때의 미인(美人)은 아름다운 사람이라고만 단정하기보다 무엇을 잘하는 사람으로 해석하여 모든 면에서 잘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팔방미인은 여덟 방위(팔방)의 어디에서나 잘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 가지 일을 특별히 잘하자고 치켜세우는 의미보다, 다방면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을 교토삼굴의 ‘삼굴’이나 팔방미인의 ‘팔방’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많이 쓰이는 말 중에 ’N잡러‘가 있다. 2개 이상의 복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을 뜻하는 ‘job’, 그리고 사람을 뜻하는 ‘~러(er)’가 합쳐진 신조어라 한다. 말하자면 한 사람이 ‘여러 직업’을 가지고 있음을 뜻하며, 본업 외에 여러 개의 부업을 하면서 금전 수입 측면이나 취미를 즐기며 자신의 삶을 가꾸어가는 사람들이다. 

회사생활을 유튜브에 올리는 직장인들이 등장했고, 그저 주말마다 좋아하는 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어느 직장인은 ‘여행스타그램’으로 큰 인기를 누리면서 여행작가를 겸하기도 한다. 취미가 직업이 되어 성공한 사람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N잡러’가 늘어날 추세이다 보니, 소위 한 우물만 파서는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기에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들은 ‘적어도 ‘교토삼굴’에서처럼 세 개의 굴을 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팔방미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 가지 일에만 매달려 세월을 보냈을 때, 그 일이 적성에 맞지 않거나 그 일이 시대적으로 사라져가는 아이템이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새로운 일을 찾기엔 너무 늦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캐’라는 말도 그런 맥락에서 요즘 심심찮게 쓰이고 있다. 이 ‘부캐’는 ‘본캐’와 대비되는 말이다. 우리말이 아니라 ‘캐릭터’에, 본래라는 의미의 ‘본’ 자가 들어간 것이니까 ‘본캐’는 자신의 주된 업무, 전문 분야로 본래 자신이 하는 주된 일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한 우물을 파고 있을 때의 자신의 고유한 직업을 말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부캐’의 ‘부’자는 ‘본’ 자와 대비되는, 부수적이라는 의미다. 원래는 온라인 게임에서 캐릭터를 추가로 하나 더 만들었을 때의 그 캐릭터를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니까 진짜 본캐가 ‘메인’이고 부캐가 ‘서브’가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말이 요즘에는 본캐는 본래의 직업, 부캐는 또 다른 자아를 의미한다. 이러한 부캐는 일종의 부수적인 수입원이 되어, 오히려 본캐의 수입을 앞지르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 우물을 파야 할까? 아니면 영리한 토끼처럼 굴을 3개 정도는 파야 할까? 한 가지 일을 전문적으로 집중해서 잘하도록 해야 할까? 다방면으로 일을 잘하는 팔방미인이 되어야 할까?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필자는 ‘하나를 잘하고 나서 여유가 있을 때, 굴을 2개 더 파는 부캐에 매달리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자신이 맡은 하나를 잘한 후에 자신의 취미를 실현하거나, 또 다른 능력을 발휘하고 싶을 때 팔방으로 얼마든지 새롭게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은, 또 다른 세 개의 굴 또는 팔방미인이 될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캐가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일지라도 자신의 일에 집중하여 그 방면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전제가 될 때, 교토삼굴이나 팔방미인, 부캐도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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