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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사제기행(師弟紀行)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6.11 14:25 수정 2017.06.11 14:25

조성일학사가 나와 사제의 인연이 비롯된 것은, 1976년부터다. 내가 문경중학교 5년 만기근무를 마치고, 옮겨 않는 곳이 산북중학교다.당시 산북중학교는 까치독사(별명)가 교감을 하고 있어서, 교무실엔 항시 전문(戰雯)과 냉기류가 흘렀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제자(학생)들은 정감이 있고 순박하여 위로가 되었다. 요새는 교장·교감·교사·학생이 그야말로 사민평등(四民平等)이지만, 당시(1970년대)는 교장·교감은 천황폐하보다 지엄지존한 존재였다.소탕한 필자(나)마저, 교장·교감은 확실히 별종으로 느껴졌다. 분위기 좋은 직장(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은, 교사로선 최고의 보너스라고 통감한다. 정년퇴임한지도, 두달만 더 있으면 꼭 13년이 된다. 평교사시절 만 27년은 순탄하지 못하고, 파란만장했다.중등교원 34년 6개월(반년)에 병을 핑계로 단 하루도 병가를 낸 적이 없어, 동료교사중엔 나를 쇠꽃이라 불렀다. 몸이 아파지 않아 개근한 게 아니라, 몸이 아파도 절대로 결근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연말의 교사근무 평정은 야박하기만 했다. 근무평정이 부진하여 승진이 몇 년 늦춰지기도 했다.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은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교부시행 중등준교사 고시검정출신이 되어, 사범대학출신들에게 밀리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부모덕을 못본 자식은 사회에 진출해도 외톨이가 될 수 밖에 없는 불공정한 사회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내가 참된 교사로 거듭난 것은, 1978년 산북중학교 교사시절이다. 당시 경북도 교육청 중등교육과 조희석(상업과)장학사가 산북중·고등학교 전반기 장학지도를 와설랑, 칭찬은 한 건도 없고, 지적 사항이 30몇개조나 되었다. 너무 지나친 혹평인 것 같지만, 필자(나)가 곰곰이 생각하니 명쾌한 지적으로 타당성이 돋보이기 까지 했다.조희석 도장학사가 장학지도 강평을 하면서, 교사 여러분들이 벽지교사라고 좌절하지 말고, 시골 학교인 이 곳에서 최선을 다하여 아름다운 자취를 꼭 남기라고 당부를 했다. 나는 그 순간 감전이 된 양 온몸이 뜨거워졌다. 나는 내가 이 학교에서 할 일이 무엇인가 마음속에 다짐이 왔다. 나의 장기(長技)인 문학을 학생들의 영혼을 깨우는데 활용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폐품과 잔디씨를 수집하여 판돈으로, 프린트판이나마 학교신문 ‘한두레’를 창간하여, 학생들의 작품을 수록하여 학생들에 큰 희망과 기쁨을 주었다.5년 만기가 되어, 한두레 2호를 내고, 산북중학교를 작별했지만, 내가 문경고등학교로 전근간 뒤에도 학교신문 ‘한두레’ 몇 십년 계속 발간되어, 학생들에게 우렁찬 기쁨의 종을 울렸다. 나는(1976년)조성일의 산북중학교 2학년1반 담임교사와 역사교과교사로서 사제의 인연을 이어갔다.나쁜(?)교무실 분위기와 상관없이, 교실에는 밝은 제자들이 배움에 열성을 보여, 교사노릇이 죽을 맛만 나는게 아니었다.산북중학교 동편으로는 흐르는 금천(錦川)에서 제자 조성일이 내게 수석(水石)한점을 주어 선사했다. 산형석이지만 오른쪽 밑부분이 조금 깨어져 나간 흠이 있는 돌이라, 당시 갓마흔의 나는 돌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냥 우리집 돌무더기 속에 방치해두고 여러해 잊고 살았다.오십대 중반이 되고 나서, 우리집 돌무데기를 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제자 조성일이 내게 준 돌이 갑자기 명석(名石)으로 내게 다가왔다. 산형석(山形石)오른 쪽의 깨어진 부분이 흠으로 보이지 않고, 완전 무결한 부분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멀쩡한 돌보다 조금 험이 있는 돌이 존재할 가치가 있는 명석(名石)인 것이다.돌도 제대로 보자면 인격이 성숙되어야 한다. 몇 해 전부터, 제자 조성일 학사는 회사 휴가날 꼭 나를 데리고(모시고), 우리나라에 가장 수려한 문경시의 산하(山河)를 답사기행하고 있다. 그 전에 근성으로 봤던 내 고장의 자연을, 제자 조성일 학사(學士)덕분에 심화 학습을 반복하고 있다.가뭄이 전국을 휩쓸지만, 문경의 젖줄 영강과 문경읍의 당포댐, 동로면의 경천댐이 극심한 가뭄에도 기죽지 않고 푸르름을 뽐낸다. 조성일 학사가 창안한 사제기행(師弟紀行)덕분에, 사제동행(師弟同行)이 길차게 이어지고 있다. 바람속에 피는 꽃처럼 어려운 직장풍토속을 잘 헤쳐 나가는 제자 조성일학사의 건승과 행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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