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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3.07.17 08:30 수정 2023.07.17 08:40

김찬곤 경북과학대 교수‧시인

↑↑ 김찬곤 경북과학대 교수

예나 지금이나 술에 대한 일화는 끊임이 없다. 최근에는, 경찰관이 음주단속에 걸렸다든지 대낮에 ‘스쿨존’에서 사고를 일으킨 사람이 어떻다든지, 주로 술이 가져다주는 폐해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과거에는 술을 꼭 나쁜 측면으로만 그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의 정서적 교감이나 시를 짓는 등 풍류를 즐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매개체로 많이 활용되었다.
 
포석정만 해도 그렇다. 물이 흐르는 수로에 술이 담긴 술잔을 띄우면, 그 술잔이 수로를 타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구조다. 술잔이 떠내려가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석 잔을 마시는 식으로 풍류를 즐겼다. 만약 그런 포석정에 띄우는 것이, 술이 아니고 물이라면 흥이 덜할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된다.
 
‘경포대 달’은 또 어떤가. 경포대에서 님과 함께 술을 마시면 모두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첫 번째는 하늘의 달, 두 번째는 경포호수의 달, 세 번째가 바다의 달, 네 번째가 술잔에 담긴 달, 다섯 번째가 님의 눈동자에 맺혀 있는 달이라 한다. 만약 술이 아니고 물이라면 다섯 개의 달을 그려내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술과 관련된 이런 정서는 비단 우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널리 알려진 중국 이태백 시선(詩仙)을 가끔 술 주자(酒를) 붙여 ‘주태백’이라고 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특히 그의 한시 월하독작(月下獨酌:달빛 아래서 혼자 술을 마시다)은 술과 관련된 시로서는 백미로 평가받는다. 그는 중국의 시문학사 중 술로 유명한 시인으로서, 술 한잔 마시면 명시 한 수를 지어낸다는, 그야말로 술과 시의 대명사라고까지 평가받고 있다. 그가 술을 좋아하지 않고, 물을 즐겨 마셨다면 과연 주옥같은 시들이 등장할 수 있었을까?

영화 ‘어나더 라운드(another round)’를 최근 TV에서 보았다. ‘어나더 라운드’에서 ‘어나더’는 ‘또 다른’이라는 뜻이고, ‘라운드’는 ‘한 회’라는 개념이니까, 우리말로 ‘한 잔 더’, 또는 ‘1차 더’라는 의미다. 교사 4명이 학생들을 가르침에 열정이 점점 식어가고 우울하기만 할 때, 그들은 하나의 묘안을 생각해내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를 낮은 수준으로 일정하게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기가 생긴다는 가설”을 세우고 직접 실천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인기가 없이 따분하던 수업이 생기가 넘치게 되었고, 덩달아 학생들의 호응이 좋아져 매사가 바라던 대로 활기찬 생활이 이루어졌다. 그러자 알코올 농도를 조금씩 높이면 활기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생각하여 실행에 옮긴 결과, 예상치 못한 결과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술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지면서 자제력이 떨어지고, 다른 사람의 시선도 곱지 않게 되었으며,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당하는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처음 실험할 때의 조심스런 긴박감은 없어지고, 술로 인한 폐해만 계속 쌓여가는 것을 교훈으로 남기는 줄거리였다.
 
이 영화가 주는 가르침은, 술은 어느 정도의 절제가 가능하지만, 이를 반복하다 보면 은연중 그 이상에 익숙하게 되고, 그러면 또 그 상태보다는 상위의 단계를 요구하게 되는 내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은 ‘적당히’라는 것의 한계를 곧잘 벗어나기 마련이라는 것을 미리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술은 양면성이 있다. 술이 인간의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 특별히 예술가나 시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창조적 행위를 유발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창작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 쓰고자 하는 의욕이 고갈되어갈 때 한 잔의 술은 가뭄에 단비 같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치면 폐해로 변하는 게 술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나칠 때를 대비하는 자신만의 내공을 철저히 쌓아야 한다. 그런 준비 중의 하나는, 사람이 만들어 낸 미학적 창조물로서의 술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마음을 기르는 일이다. 그리하여 술로 인해 멋진 생활이 되도록, 또 적어도 낭패를 보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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