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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머그(mug)’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3.07.31 09:45 수정 2023.07.31 11:45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필자는 커피를 그다지 즐기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일부러 커피 자리를 피해 다니지도 않는다. 문제는 양이다. 카페에서 나오는 커피의 양은 내가 마시고 싶은 양을 언제나 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담겨 나온 커피를 반만 마실 수도 없다. 커피잔을 두고 마주 앉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억울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깨끗이 잔을 비워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가 큰 ‘머그컵’으로 가득 나온 적이 있는데,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이를 다 마시고 밤을 꼬박 새운 적이 있다. 처음부터 이를 다 마시면 밤잠을 설치지는 않을까 걱정은 되었지만, 남기는 게 어색하여 홀짝 다 마신 결과였다. 양만 적당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내겐 ‘머그컵’ 커피가 확실히 과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런 ‘머그컵’은 ‘손잡이가 있는 통형의 큰 컵’이다. 컵을 만든 재료야 어떻든, 보통보다는 어쨌든 큰 컵을 일상생활에서 ‘머그컵’이라 부른다. 뜨거운 우유나 커피 등을 마시는 데 편리하게 사용되는, 일반적인 잔보다 양을 많이 담을 수 있다는 기능과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 달 전에 방탄소년단의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축제가 국내외에서 열렸다. 서울 주요 거리에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고, 어느 날은 총 40만 명의 축하객이 모였다는 뉴스도 있었다. 그들의 팬 '아미(Army)'를 중심으로 외국인도 12만 명이나 참여했다고 하니 새삼 그 인기를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마침 그중의 한 멤버가 개인 라이브 방송에서 사용한 컵이 아마존(Amazon)에서 품절 대란을 불러왔다는 소식이 큰 뉴스거리가 되었다. 그 컵이 바로 ‘머그컵’이어서 ‘머그’라는 이름이 조명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런 ‘머그’에 ‘샷(shot)’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여 ‘머그샷’이라고 하면, 전혀 다른 느낌의 새로운 의미의 낱말이 된다. 경찰이 피의자의 얼굴을 식별하기 위해 찍은 사진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피의자의 정면과 측면사진이 주를 이루며, 범죄자를 체포한 후 구금 과정에서 촬영하는 ‘얼굴 사진’이다. ‘머그’가 큰 잔을 뜻하고 ‘샷’은 사진 찍는 행위를 일컬으니 ‘머그샷’은 단순히 ‘얼굴을 크게 찍는 사진’으로 해석하는 게 맞지만, 현실에서는 동떨어지게 쓰이고 있는 셈이다.
 
‘머그샷’과 관련된 일화도 많다. 그중 필자에게 가장 재미있는 것은, 작년 6월 호주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뉴스였다. 호주 경찰이 절도 혐의로 기소했다가 보석으로 풀어준 40대 여성이 있었는데, 그 피의자와의 연락이 끊기자 지명수배를 하였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피의자 얼굴 사진인 ‘머그샷’을 공개했더니, 뜻밖의 반응이 쏟아진 것이다. “숨 막힐 듯한 외모” “내 마음을 훔쳐 수배 중”이란 얼굴 칭찬 댓글이 달리면서, 그 피의자가 오히려 사회적 인기를 누리는 방향으로 여론이 흘러갔다고 한다.

뜻밖에 그 얼굴이 대중적으로 화제가 되자 그녀는 공개 하루 만에 자수했다고 한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하루빨리 그녀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머그샷’이라는 수단이 가져온 성과임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를 분노하게 만든 머그샷 일화도 많다. 소위 ‘돌려차기’로, 귀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가해자의 신상이 법적으로 공개될 수 없다고 하자, 어느 한 유튜버가 가해자의 ‘머그샷’을 공개하여 오히려 그 유튜버가 곤란해졌다는 뉴스가 그랬고, 또래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의 ‘머그샷’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주민등록증 사진으로 하는 바람에 고등학교 시절 동창생도 못 알아볼 정도였다거나, 전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도 처음 공개된 ‘머그샷’이 실제 인물과는 너무 많이 달라 주변인도 못 알아본 것 등이 그렇다. ‘머그샷’이 큰 얼굴 사진인데, 이것을 보고도 실물 파악을 할 수 없다면 진정한 개념의 ‘머그샷’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필자는 이런 어두운 개념의 머그샷보다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밝은 개념의 머그샷, 말하자면 사회에 기쁨을 주는 사람들의 웃음 띤 머그샷이 많아지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때는 필자도 비록 밤잠을 설치는 한이 있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머그잔’ 가득 커피를 즐겨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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