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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천년신라의 4대 석학(四大碩學)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7.03 10:03 수정 2017.07.03 10:03

一설총·강수·김대문·최치원一설총·강수·김대문·최치원

신라(B·C 57년 A·D 935년)는 단순하게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릴수 있는 단순한 나라가 아니라, 빛나는 고유문화를 지닌 위대한 나라로 두고두고 탐구해야 할 나라다. 신라의 3대 문장가로 강수·설총·최치원을 말하지만, 필자(나)는 신라국학의 독보, 김대문을 포함하여 신라 4대석학에 대하여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먼저 강수(?-692년)는 무열왕·문무왕·신문왕을 섬긴 문신으로 유학과 문장에 뛰어났다. 특히 외교문서 작성에 능하여, 대당외교에 큰 역할을 했다. 신라 삼국통일 완수에 활이 아닌 붓으로 크게 애국을 했다. 설총은 신라 경덕왕때의 학자로 경주 설씨의 시조다. 원효대사의 아들로, 신라 십대현인중 한 사람이다. 유학과 문학에 조예가 깊어, 국학에 들어가 학생들을 가르쳤고, 이두를 체계적으로 보급하여, 한학 발달을 크게 도왔다. (화왕계)를 지어, 신문왕을 충간(충고)했다. 김대문은 신라의 삼국통일뒤 전성기(성덕왕)에 활약한 소중한 국학연구의 대가다.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한산주(경기도)도독(지사)을 지냈다. 화랑세기·고승전·한산기·악본등을 지어, 동시대의 학자들이 신라에 무관심한데 비하여, 내 것에 주목한 매우 소중한 학자라 하겠다. 최근 그의 ‘화랑세기’필사본이 발견되어 한 때 눈길을 끌기도 했다. 최치원(857~?)은 신라 말기의 유학자로, 12세때 당나라에 유학하여, 거기서 빈공과(과거)에 급제하여, 당나라 관리가 되었다. 879년에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반란군토벌에 참가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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