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칼럼

끼리끼리 만나...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3.11.25 11:12 수정 2023.11.26 06:26

조정희 휴피부관리실 원장

↑↑ 조정희 휴피부관리실 원장

‘끼리끼리’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여럿이 무리를 지어 따로따로’다. 같이 이면서 또 넓게는 따로 인, 무리라고 해석된다. 그러나 ‘끼리끼리 논다’는 기분 좋은 의미보다 부정적인 뜻을 가진 것 같아, 조금은 조심스럽다. 하지만 난 소속감을 주고, 친구의 또 다른 말인 것 같아 참 좋아하는 말이다.

현대는 생각과 가치관이 같거나, 좋아하는 것들이 같거나, 싫어하는 것들이 같거나, 목표가 같거나, 관심사가 같거나... 자연스럽게 다양한 끼리끼리가 만들어진다. 서로 더 알고 싶거나, 배우고 싶거나 내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그 ‘끼리끼리’에 속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찾아다니고 만들다 보니, 여러 카페서 다양한 동호회 활동을 한다.

사회생활을 하며 새로운 관계의 시작은 아주 쉬워지고 가벼워져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 속에서 서로 위로받는다. 더하여 응원도 받지만, 진정한 친구 만들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조심스러워지는 요즘이다.

올해 중학생이 된 딸아이는 요즘 친구관계가 많이 고민인 듯하다. 세상 어느 것보다 친구가 최고로 소중한 시절이다. 서로가 좋으면서도, 안 맞는 부분이 있듯 하다. 우정의 ‘끼리끼리’는 자기에겐 싫어도 맞춰줘야 하는 것들을 차차로 알아가고 있다.

친구 끼리끼리도 가끔 상처받는다. 상처받은 흔적이 나중엔 더 여문 씨앗이 되는 줄을 지금은 모를 거다. 가끔은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진짜 친구가 되어가는 중 인거다. 상처가 우정 자람의 또 다른 꽃핌 같은 것으로 본다. 깔깔거리고 웃다가 사소한 말 한마디에 울고불고 한다. 소중하고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딸에게 좋은 친구의 기준을 잡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나의 유년시절 좋아했던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권해본다.

학창시절 나는 좋은 친구를 갖고 싶었다.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은 욕심도 컸다. 나 또한 관계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 속에서 고군분투했다. 물론 좋은 친구도 되어주진 못했다. 친구가 되어가는 중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비록 가치관이 다르고, 나의 단점이 보여도, 아무런 목적 없이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가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다름으로 인정한다.’ 이러니 존중해주는 이가 옆에 남는다.

가끔은 부드럽게, 가끔은 아프게 정곡을 찌르며, 무모한 내 모습을 돌아보게 해줘, 사람답게 어른답게 성숙할 수 있게 해준다. 칭찬을 아끼지 않지만, 그 속에 부족함을 깨닫게 해줘, 경솔하지 않고 늘 겸손할 수 있게 해주는 친구가 내겐 있다.

갈수록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지고 동화되어 가는 것이 힘들어지고 번거롭다고 생각되니, 새로운 친구 만들기는 더 힘들어 지는 것 같다.

공통된 부분도 딱히 없지만, 언제 부터인지도 모르게 서로에게 스며든 편안함으로, 우린 끼리끼리 놀고 있다. 물론 알아온 시간에 꼭 비례하진 않는다.

오리려 나이 들며 정리되는 관계들도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몇 남지 않은 친구들끼리 만나 뭐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는다. 그러다 같이 눈시울 붉히기도 한다.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치하게, 조금씩 더 여물어간다.

끼리끼리 만나 서로를 최고로 만들어주니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된다. 좀 더 멋진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친구는 이렇게 위대한 것인 걸, 얼마나 사소함에서 오는 것임을 한 살 한 살 더 살며 알아가고 있다.

지금도 앞으로 새로운 끼리끼리 속에서 내 인생에 보석같이 남아줄 새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설레는 마음으로 세월이라는 시간을 낚는다.


저작권자 세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