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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한 신경주대학교 기획경영부총장‧언론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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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는 말은 윌리암 셱스피어가 1602~1605년에 만든 희곡의 제목이다. 희곡의 줄거리는 명의인 아버지가 죽고 그의 딸 헬레나는 후견인인 로실리온 백작 부인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 집의 백작 부인의 아들 버트람을 만나 짝사랑을 한다.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헬레나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는다.
헬레나는 버트람을 쫓아 파리로 건너간다.
아버지에게 배운 비방으로 프랑스 국왕의 병을 고쳐준다. 그 댓가로 버트람과 결혼을 한다. 신분 때문에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남자를 온갖 노력을 다해 소원을 이루는 헬레나의 눈물겨운 사랑이 전개된다. 지나온 날들은 비극적이지만 마지막 해피 엔딩으로 모든 것을 슬프지 않는 추억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심리학자며 경제학자인 다니엘 커너먼(Daniel Kahneman)은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을 제시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논리다. 그는 사람의 기억은 가장 극적 순간과 마지막 순간에 국한되며 전반적 과정은 기억에 별로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시작은 불행해도 끝에 행복했다면 삶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얼마나 사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며 어떻게 사는 것도 마지막을 잘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인생의 마무리를 잘 해야하고 모든 일에도 마지막 마무리가 중요하다. '바보야 인생은 후반전이야' 라는 말에는 '유종의 미가 중요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에 의한다면 시작과 과정이 끝과는 관련이 없는 인과법칙을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 받을 수 있다. 결과만 생각하고 시작과 과정을 무시하고 태만한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주어진 현실에서 정직과 성실을 다 하고 마지막에도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경우일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참회를 하면서 마지막 인생을 바르게 살려고 최선을 다 할려고 할 그 때에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과오인지 죄악인지도 자각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그 길로 가다가 그대로 숨을 거둔다면 시작과 끝 모두 불행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크게 깨달음을 얻고 바른 삶은 산다면 과거의 모든 것을 덮고 다 좋다 할 수 있다. 예수는 마지막 십자가에 메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을 죽이려한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예수와 같이 십자가 달린 오른 편 강도는 최후의 순간에 예수를 증거하여 낙원으로 갔다. 바울도 회개하고 마지막에 주님을 증거하며 살다가 갔다. 유관순과 안증근 열사도 마지막 죽음 직전에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에 어떻게 죽는냐가 매우 중요하다.
국가 흥망과 생사 기로에 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살다가 갈 것인가. 죽기 전에 마지막에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나는 이렇게 유종의 미를 남기고 가겠다는 작심과 실행을 하고 가야한다. 내가 죽고 난 뒤에 사람들이 나를 보고 '끝이 좋으니 다 좋다'는 말을 하게 해야 한다. 한 해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디서나 마무리가 중요하다. 교회와 학교, 기업과 단체 등 인간이 하는 인생사 전반이 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