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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에 바란다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4.01.01 12:21 수정 2024.01.01 12:50

김찬곤 경북과학대 교수‧시인


올해는 갑진년(甲辰年) 용(龍)의 해다. 우리나라는 용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용은 오래전부터 상상의 동물로서 신화나 전설의 중요한 제재로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민간신앙의 대상으로서도 큰 몫을 차지해 왔다.

옛 문헌에 등장하는 용의 모습은 범상치 않다. 인충(鱗蟲) 중의 우두머리로서 그 모양은 다른 짐승들과 아홉 가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소리는 구리로 만든 쟁반 울림과 같고, 입 주위에는 특이한 긴 수염이 있으며, 턱 밑에는 구슬이 달려 있고, 목 아래에는 거꾸로 박힌 비늘(역린:逆鱗)이 있으며, 머리 위에는 박산(博山:공작 꼬리 무늬같이 생긴 용이 지닌 보물)이 있다고 하였다.

글자 ‘용(龍)’을 ‘미르 룡’이라고도 하였다. 용의 순우리말이 ‘미르’였다는 뜻인데, 이 ‘미르’는 물(水)의 옛말 ‘믈’과 상통하는 동시에 ‘미리(豫)’의 의미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물과 관련해서는 당연히 수신(水神)의 영역에 있었기 때문이라 해석되는데, 그래서 용이라 하면 물과 관련한 일화가 많고, 물을 마음대로 변화시키는 조화능력이 있는 신이었다는 설화도 많다. 또 ‘미리(豫)’의 뜻과 같이, 사전에 무엇을 암시하는 선지자의 역할도 하였다.

용이 등장하는 설화에서는 반드시 어떠한 미래를 예시해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이 그 이치를 대변한다. 용꿈에 얽힌 설화는 거의 큰 경사를 예고하는 것들이어서, 꿈 중에서는 용꿈이 으뜸으로 일컬어져 왔다. 그래서 용은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서 큰 희망과 성취의 상징으로 여겨져 오고 있는 것이리라. 입신출세의 관문을 등용문(登龍門)이라 하고, 사람이 출세하면 ‘개천에서 용났다.’라고 하는 것은, 일상에서 용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증거라 생각된다.

우리 전통 신앙에서 용이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컸다. ‘용왕’이 사는 곳을 ‘용궁’이라 한다든지, ‘용왕’을 ‘용왕할머니’ ‘용신할머니’ 등으로도 부르면서 경외심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용왕굿’은 옛날 우리나라 촌락사회 어디에서나 흔히 접할 수 있는 행사로서, 식수의 고갈을 예방하고자 하는 의식이었다 하는데, 문헌에서는 ‘용신제’ 등으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또 용은 운행우시(雲行雨施), 즉 마음대로 비를 오게 할 수 있는 조화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농경사회에서의 그 신성함과 신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용과 관련된 지명도 부지기수다. 용지(龍池)나, 용두산(龍頭山), 용연(龍淵), 용수암(龍水巖), 용정(龍井), 구룡산(九龍山), 용소(龍沼), 용담(龍潭), 용혈암(龍血岩), 용마연(龍馬淵), 용추(龍湫), 용문(龍門), 용마(龍馬) 등은 우리 이웃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용과 관련된 이름들이다. 풍수사상에서도 용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데, 풍수에서는 산을 용이라 했다고 한다. 기복변화가 무상한 산이, 마치 음양조화를 마음대로 하는 용의 조화와 서로 통한다는 뜻에서 나온 신앙이라 한다. 큰 산맥을 간룡(幹龍)이라 하고, 주산맥에서 분류하는 지맥을 지룡(枝龍)이라 하며, 용의 생김새를 빗대어 길룡(吉龍), 흉룡(凶龍), 생룡(生龍), 사룡(死龍)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또 지붕에 ‘용마루’를 설치하고 기와에는 ‘용두(龍頭)’ 모양을 장식하여 화재를 막고 귀신을 물리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전한다. 정초에는 ‘용호(龍虎)’ 그림과 글자를 대문에 붙여 액을 물리치고자 기원하였으며, 마을을 상징하는 농기에는 용 그림을 그려 풍요를 희망하였다고 한다.

용은 그 장엄한 외모 때문에 위대하고 훌륭한 존재로 비유되면서, 왕권이나 왕위로 상징되기도 하였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 덕을 용덕(龍德), 지위를 용위(龍位), 의복을 용포(龍袍)라 한 것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임금이 앉는 평상을 용상(龍床), 임금이 타는 수레를 용거(龍車), 임금이 타는 큰 배를 용가(龍駕), 임금이 흘리는 눈물을 용루(龍淚), 임금이 사용하는 물건에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얽힌 모양을 수놓아 만든 기를 용기(龍旗)라 한 것을 보면, 용을 얼마나 우러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렇듯 용은 많은 신비감을 가지고 있다. 신비감은 신령스러운 느낌이며, 우리가 바라는 바를 이뤄내는 영험함으로 비유될 수 있다. 용의 해를 맞아 무한히 잠재된 우리의 능력을 용의 기운으로 뿜어내어, 의도하는 바를 뜻대로 이뤄내도록 노력하자. 한 해 계획을 정성 들여 구상하고 알차게 실천하여, 용이 지닌 신령함을 기쁨으로 맞부딪혀 보자.

그러나 과거의 상징적 용에 지나치게 도취하지는 말자. 미래지향적 상상력과 창조력에 의한, 나만의 새로운 용의 모습을 만들어 나가보자.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했던가, 무슨 일에서든 가장 중요한 완성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용이 우리의 상상 속에서 안주하도록 하지 말고, 현실 속에서 용트림하도록 애쓰자. 아무쪼록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를 맞아 청량하고 신성한 기운대로 뜻하는 바를 이루어 나가는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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