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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휴일 아침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4.02.27 00:29 수정 2024.02.27 11:04

조정희 휴피부관리실 원장

↑↑ 조정희 휴피부관리실 원장

모처럼 한가한 휴일 아침! 깊은 단잠에 빠진 식구들을 배려도 없이, 아침형 인간인 남편은 부산을 떨면서, 반려견 ‘복실이’와 어김없이 산책을 준비한다. 조금 늦기라도 하는 날엔 복실이가 현관문을 꼬리로 두드리며 재촉한다.

“산책가자” 늘 거절을 당하면서도 뒤척이는 나에게도 같이 산책가기를 권유한다. 조금 게으름을 피워도 용서되는 휴일 아침이다.

전날 저녁부터 미뤄두었던 드라마와 영화를 보느라, 새벽에야 잠에 골아 떨어졌다. 휴일 아침의 달콤한 늦잠을 한껏 느끼고 싶은 나에겐 참 힘든 제안이다. 다행히 피곤한 듯 돌아눕는 나에게 재차 권하진 않는다. 그렇게 한참 만에 산책에서 돌아와, 자기 이마의 흥건한 땀을 개구지게 내 얼굴에다 비비댄다. 거절의 대가(代價)라 생각하니 짜증이 확 몰려온다.

어느 휴일아침 일찍 가족 모두가 아침 산책을 나선다. 휴일이 다가오는 며칠 전부터 때로는 부탁하고, 때로는 강압적인 남편의 제안을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한다. 아들, 딸과 함께 그리 유쾌하지 않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따라 나선다.

아침을 일찍 가족끼리 산책을 시작하면, 하루의 알찬 시간에 대해, 그동안 복실이와 산책하며, 훈련시킨 개인기 자랑에, 우리 동네, 다양한 산책코스의 재미에 대해... 모처럼 천군만마를 얻은 듯 남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오랜만에 가족 모두 휴대폰에 잡혔던 것으로부터 벗어나니, 자연이 주는 값 없는 바람소리, 새소리들이 귓전을 마구 때린다. 이래도 서로의 목소리와 표정을 듣고 읽을 수가 있다. 평소보다 좁혀진 거리감이 싫지 않다.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의 공부이야기, 학교이야기,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사춘기 딸의 친구 이야기, 만들어 보고 싶는 쿠키 이야기, 각자 방 정리정돈 습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서로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시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산책 후 아침은 무얼 먹을지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은 앞서기도 하고, 뒤로 처지기도 한다. 남편은 복실이 와의 보폭을 적절히 조절한다. 복실이가 제 나름대로 냄새도 맡으며, 호기심도 만끽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응원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빠는 우리가 같이 안 오면 복실이랑 둘이서 저렇게 서로가 사이좋게 친구처럼 산책 하겠네” 아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그러네” 아들도 작은 목소리로 답한다. 이때 문득 남편의 뒷모습이 웬일인지 쓸쓸해 보인다.

‘산책가자’는 ‘우리 이야기 좀 하자’이었나 보다. 가족들이 각자의 시간에 충실하며 바쁜 서로에게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기다려주다 보면 대화도 준다. 무관심에도 빠진다. 이러다 어색해 진다고 생각한 남편이 나로부터 거듭 거절을 당하면서도 끊임없이 산책가자고 했는가 보다.

덕분에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들도, 나도, 상쾌한 아침공기 탓인지 오랜만의 수다 탓인지 아침 햇살 같이 얼굴에 환한 빛이 감돈다.

‘내일 아침 산책에 나 데려가줘’ 이제부턴 내가 먼저 남편에게 휴일 아침 산책에 함께 해주기를 제안하게 됐다. 어떤 날은 옛날 시골 오솔길 같아서, 좋아하는 자락 길을 걷는다. 어떤 날은 작은 암자에 들러,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부처님 전에 합장도 한다. 어떤 날은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새로 생긴 카페도 구경한다. 한주동안 살아내느라 힘들었던 이야기, 시끄러운 정치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휴일 아침 조금은 멀어진 서로에게 다가서는 시간이 절로 오기보단, 노력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회복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무심해지고 날카로웠던 시간들과,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아주 사소한 수다로, 아주 평범한 일상으로 쑥스럽지 않게, 유난스럽지 않게, 치유(治癒)의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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