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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3월 1일의 물결을 되새기며

김경태 기자 입력 2024.02.28 10:18 수정 2024.02.28 18:47

백창훈 경북남부보훈지청 보상과



1919년 3월의 첫 날 날이었다. 탑골공원에 모인 인파는 하나 둘 술렁이고 있었다. 독립 선언서를 낭독해야 할 민족 대표 33인의 부재, 유혈충돌을 방지하려 했던 그들의 뜻은 의심없이 순수했지만 구심점을 잃은 인파는 모두 지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 때에 앞장 선 이는 정재용 선생이었다. 그는 품속에 숨겨두었던 독립 선언서를 꺼내어 팔각정 단상 위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렇게 나비의 날개짓은 태풍이 되었고, 그가 붙인 작은 불씨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한 큰 불길이 되었다. 정계, 학계 및 종교계의 거두가 아닌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 배운 지식인이 발휘한 용기와 그가 내딛은 몇 발자국이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것이다.

보훈의 사전적 의미는 갚을 보에 공 훈, 즉 공적에 보답한다는 의미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공적 속에 세워졌으며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 풍요의 밑바탕에 유공자들의 위업이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예외없이 해당되므로 보훈 역시 모두의 몫일 것이다. 

3.1 운동에서의 정재용 선생의 역할에서 우리는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누군가가 해 주겠지', '거창하고 복잡한 일이므로 제도적 뒷받침이 수반되어야겠지'하는 마음이 아닌 우선 나 하나부터 실천하는 것이 보훈일 것이다. 마음가짐으로, 일상 속에서, 작은 것부터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유공자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을 대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치 3.1운동의 불씨를 지핀 정재용 선생의 실천처럼 말이다.

본인은 국가보훈부에 소속되어 공무원으로서의 책무 하에 보훈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3.1운동의 이 일화를 되뇌어본 순간 공무원이 아닌 개인이자 한 국민의 일원으로서도 유공자들의 공적에 감사하고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혹시 모를 일이다. 작디작은 몸짓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실천이 3.1운동처럼 큰 여파가 되어 이 사회를 더 바람직한 모습으로 만들 수 있다. 

예우받고 존경받는 유공자들의 모습, 그들을 대우하는 국가와 이 사회의 모습을 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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