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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척도(尺度)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4.04.29 08:00 수정 2024.04.29 08:13

김찬곤 경북과학대 교수‧시인


심리학의 중심에는 ‘사람의 마음’이 있다. 그래서 아마 심리학이 추구하는 바는, 그 마음이 어떤 근거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일까를 밝히는 것이리라. 우리는 많은 소중한 시간 속에, 우리의 행동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 것인지 평소 신경 쓰면서 행동하지는 않지만, 상황에 따라 그런 행동이 무엇 때문에 나타나는지, 그런 행동에 어떤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지는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일찍이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수단으로 ‘척도’라는 개발하여, 학문적으로는 물론 현실에서 다양하게 활용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척도’에 대한 무조건적 수용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다소의 비판적 도입이 필요해 보인다. 왜냐하면 ‘척도’는 다양한 종류 중에 목적에 맞는 가장 적합한 하나를 찾아내야 하며, 그 하나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적용 과정에서 오차가 발생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어떤 인기있는 척도의 선택에 대한 무분별 추종은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척도는 무엇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따라서 원래의 의도나 목적과는 동떨어져 적용되기도 쉽다. 예컨대, ‘명목척도’는 대상의 의미에 따라 숫자를 부여하는 범주형 척도인데, 주로 설문지에서 인구학적 특성을 조사할 때 사용되며, 성별이나 최종학력 같은 질문에 이 척도가 곧잘 활용된다. 즉, 측정된 숫자에 대한 의미가 전혀 없는데도 이를 숫자의 크기로 비교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남자를 1, 여자를 2로 표기한 통계적 해석에서 ‘여자는 남자의 두 배’라고 말하는 경우와 같다.

‘등간척도’라는 것은 척도 간의 값이 동등한 간격으로 이루어진다는 가정하에, 설문조사에서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당신이 이 대상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1. 전혀 만족하지 않음, 2. 만족하지 않은 편임, 3. 보통, 4. 대체로 만족함, 5. 매우 만족함'이라는 5점 척도로 응답을 요구하는 경우다. 이론적으로는 1점과 2점 간의 차이, 2점과 3점 간의 차이, 3점과 4점 간의 차이, 4점과 5점 간의 차이가 모두 같은 것으로 가정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인위적 구분에 따른 응답일 뿐, 실제로 그 차이만큼 숫자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서열척도’는 측정 대상을 순위화한 것으로, 질문에 대한 응답자의 선호도를 순위화하는 데 사용된다. "당신이 가장 선호하는 스포츠 순위를 매기시오.”라는 질문에 “1. 축구, 2. 배구, 3. 야구"라고 답하는 경우다. 이 같은 서열척도는 주로 선호도나 우선순위 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지만, 그렇다고 축구와 배구의 선호 차이 척도처럼 배구와 야구도 꼭 그것만큼 차이가 난다고 할 수는 없음을 간과하고 있다. 축구와 배구는 거의 비슷하게 좋아하지만, 굳이 선택하지 않을 수 없어서, 축구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의사표시를 한 경우, 배구와 야구는 확실히 차이가 나서 배구는 너무 좋아하고 야구는 너무 싫어하는 경우라면, 1위와 2위의 척도 점수와 2위와 3위의 척도 점수가 내포하는 의미는 매우 다른 것이다.

‘비율척도’라는 것도 있다. 이는 절대적인 영이 존재하는 숫자 척도인데, 이것으로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등의 사칙연산도 가능하다. 예컨대, 거리나 무게, 시간 등은 비율척도에 해당하는데, 10m와 20m 사이의 거리 차이는 10m로, 이는 20m와 30m 사이의 거리 차이와 동일하다. 0km는 아예 이동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절대적 '0'의 개념이며, 10km는 5km의 2배라는 비율 관계 등을 나타내는 경우다.

문제는 어떤 ‘척도’를 쓰느냐인데, 상황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데도, ‘척도’를 먼저 선택을 해놓은 다음 의견을 물으려 하니 무리가 뒤따르는 것이다. 단순히 해석을 잘못함으로써 초래하는 가벼운 결과는 문제 될 리 없지만, 잘못된 ‘척도’ 때문에 엄청난 잘못된 결과가 불거지는 경우는 낭패를 부른다. 즉, 같은 사실을 묻는 척도에서, 명목척도일 때와 등간척도나 서열척도일 때의 분석 결과나 해석이 매우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척도’를 정할 때, 당시 유행을 따름으로써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따라서 ‘척도’를 적용할 때, 일정한 규칙에 따라 측정 대상에 잘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계량적 도구를 어떻게 잘 선택할 것인가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받아들이는 척도의 종류에 따라 결과가 상당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결과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행동의 결과를 설명하는 과정에 심리적 요인이 가미된 해석을 하는 경우, 그런 해석을 도출하게 된 척도 선택이 그래서 중요하다. 적어도 ‘척도’를 잘못 선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많은 시도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잘못된 척도는 없는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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