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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소풍을 가야겠다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4.05.22 09:09 수정 2024.05.22 09:12

조정희 휴피부관리실 원장

↑↑ 조정희 휴피부관리실 원장

어릴 적 봄가을로 소풍날이 정해지면 입고 갈 옷이며, 가방가득 뭘 사갈지에 대해 설렘으로 지낸다. 보물찾기는 잘할 수 있을지, 장기자랑 준비에 몇날 며칠이 교실이 흥분 상태다. 소풍 전날 동네 시장이나 슈퍼(마트)를 가면 소풍으로 들뜬 친구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콜라, 환타, 입맛대로 고른 과자, 엄마가 아침 일찍 싸준 김밥, 주머니 속 엄마가 챙겨준 용돈 때문에, 터질듯 한 소풍가방이 무거운지도 모른다. 전교생이 모두 함께 가야하니, 도심을 벗어나 적어도 1시간 정도는 두 줄로 나란히 발 맞춰 걸어야 소풍장소에 도착할 수 있다. 그래도 힘들단 생각을 못했으니, 얼마나 신난 하루였나.

요즘엔 소풍이란 말을 듣기 힘들다. 현장학습이란 이름으로 교육의 연장선에서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의 시간이 소풍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같이 김밥을 싸는 일도 줄었다. 학교 급식이 생겨나며, 오전 현장학습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가 급식을 먹거나, 급식으로 점심을 학교에서 먹고 오후에 현장학습을 가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래도 학교를 떠나 휴식의 시간에 대한 아이들의 설렘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점심시간 엄마가 싸준 김밥이랑 간식을 먹고, 장난감 장사꾼에 정신을 팔렸을 때 쯤, 일찍 식사를 마친 선생님들이 바위 틈새며 나무사이로 몰래 숨겨놓은 보물찾기는 소풍의 가장 즐거운 일이다. 상품도 노트 몇 권이 다였는데, 참 열심히도 치열하게 찾아 다녔다. 그것도 찾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함께 찾아다니기도 한다. 인기 좋은 선생님의 통기타 연주를 듣기라도 하면, 그날은 눈도 호강하고 귀도 호강하는 날이다.

요즘처럼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게임을 즐길 프로그램이 다양한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수건돌리기, 눈 가리고 술래잡기, 장기자랑이 다였다. 낯선 풍경서 낯선 바람 등자연이 주는 여유와 자유로 하루 꽉 차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가벼워진 가방 덕인지 왔던 길이여서, 되돌아오는 길은 갈 때 보다 가까운 느낌이다. 다음 날 개교기념일이기라도 하면, 얼마나 더 달콤한 하루가 남았던가...

여러 가지 이유 탓에 누군가엔 가기 싫었을 소풍이다. 설렘 가득 안고 갔지만, 실망만 가득 안고 돌아온 친구도 있다. 가고 오는 길이 너무 멀기에, 정작 소풍을 즐기지 못한 친구도 있다. 다시는 소풍 같은 건 안갈 꺼라 다짐하는 친구도 있다. 너무 신나서 다음 소풍을 손꼽아 기다리는 친구도 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천상병 시인은 ‘귀천’에서 삶을, 인생을, 소풍이라 했다. 불현듯 난 소풍을 그 자체로 느끼고 경험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 소리가 어땠는지, 봄날 아니면 가을날 햇살은 어땠는지, 봄과 가을이 주는 자연의 향취는 어땠는지, 길가의 들꽃은 얼마나 목을 쭉 빼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을지, 손끝으로, 콧 끝으로, 눈 속으로, 하나도 담아 오지 못했다.

소풍을 가야겠다. 김밥도 싸고, 과일도 예쁘게 담고, 달달한 커피와 캠핑의자도 챙겨야겠다. 눈물 핑 도는 시집도 하나 챙겨야겠다. 바쁠 것 하나 없는 듯, 힘든 일 하나 없는 듯, 두려운 것 하나 없는 듯, 마치 오늘만 주어진 듯, 느껴지는 모든 것들을 솜털 하나하나에 담아야겠다. 누구도 보물을 숨겨 놓지 않았지만, '자연이 숨겨둔 값진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소풍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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