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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여자 수학‘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4.07.08 09:24 수정 2024.07.08 09:30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요즘은 물건을 사기 위해 직접 시장에 가는 경우는 드물다. 살 물건을 적어 두었다가 쉬는 날 대형 마트를 찾아 한꺼번에 구매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 구매를 주로 하는 추세다. 그런데 큰 마트의 경우, 묶음 판매가 많아서 꼭 필요한 개수보다 항상 더 많이 사게 되는 경험을 한다. 칫솔의 경우, 1개에 1,000원 하는 것을 10개 묶어 9,000원에 사게 되면 왠지 모르게 1,000원 싸게 샀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커피 한 봉지에 1만 원 하는 것을, 두 봉지 묶어서 1만 5,000원 하는 것을 샀을 때는 이익을 본 듯한 느낌까지 받을 때가 있다.

필자의 경험도 그렇다. 얼마 전에는 좀처럼 안 입던 옷을 꺼내 입었는데, 주머니 속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돈이 나와서 무척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었다. 분명 내가 넣어두고 잊어버렸을 내 돈일 뿐인데 말이다. 필자는 또 인터넷 구매를 할 때 배송비가 얼만지 빠짐없이 살핀다. 그때 얼마 이상의 금액은 배송비 무료이기 때문에 그 금액을 넘기기 위해 그 물건 개수를 더 많이 구매한 경험도 있다. 단순히 배송비를 아끼기 위해서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더 사게 된 경우였다. 그럼에도 배송비를 아꼈다는 생각 때문에 기분이 무척 좋았던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이익을 본 게 아닌데 마치 혜택을 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지난해 뉴질랜드 어느 라디오방송 진행자들이 만든 말이 있는데, 바로 ‘girlmath’라는 단어다. 우리말로는 ‘여자 수학’ 쯤으로 해석될 듯싶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해시태그 ‘#girlmath’를 단 콘텐츠들이 세계로 퍼지며 몇 개월 만에 10억 뷰를 넘어섰다고 한다. 말이 10억 뷰지 실로 엄청난 반응이다.

거기서 언급된 ‘여자 수학(girl math)’은 다음 같은 계산법이라고 국내 한 언론에서 설명한 것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집 안 대청소를 했다. 재킷 주머니에서 거금 5만 원을 찾았다. 분명 ‘내 돈’이었음에도 돈을 번 것 같은 이 기분! 아니 번 것이나 마찬가지다. 존재를 몰랐다면 쓰지 못했을 돈이니까.” 그렇다. 분명 필자가 느꼈던 감정 그대로다. 내 돈 이지만 새로 생긴 공돈 같다.

또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5만 원 이상 사면 무료 배송을 해준단다. 지금 구매한 금액이 42,000원이니, 8,000원만 더 쓰면 배송비 3,000원을 아낄 수 있다. 장바구니에 1만 원짜리 물건 하나 더 담아 5만 2,000원 결제했다. 오늘도 3,000원 벌었다” 그러니까 배송비 3,000원을 아끼기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1만 원짜리 물건을 하나 더 산 셈이지만 기분은 좋다.

홈쇼핑에서 쇼호스트가 하는 말 중 하나는 ‘이 물건은 하루 얼마 꼴’이다. 예를 들면, 값비싼 주방용품을 판매하면서, “이 상품으로 온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는데, 이 물건값은 하루에 고작 얼마”라는 멘트다. 명품 가방도 그렇다. “100만 원짜리 가방이 비싸 보여도 1년 365일 들고 다닌다면 하루에 고작 2,740원꼴인데, 이 돈은 커피 반 잔 값이 될까 말까다. 그래서 오래 자주 들고 다니면 들고 다닐수록 싸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 방송이 끝나기 전에 빨리 사야 하겠다는 조바심마저 든다.

이런 계산법이 바로 ‘여자 수학’이라는 것이다. 성별 편견을 나타내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낱말이 절대로 아니다. ‘여자 수학’이란 절대적 금액만을 비용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요인을 이익으로 추산한다고 설명한다. 또 ‘맛있으면 0(zero)칼로리’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라고 하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맞아 자기 만족적 소비 행태’라는 설명도 찾아볼 수 있다.

‘여자수학’에 여성 비하 논란이 일자 ‘남자 수학’이란 신조어도 생겨났다고 한다. 어느 트위터 사용자는 ‘여자 수학’에 대비시킨 ‘남자 수학’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남자수학’이란 250억 달러 가치 회사를 440억 달러에 사서 온갖 사업적 수단을 동원해 88억 달러짜리 회사로 만드는 것” 분명히 손해를 보았는데도 트위터를 인수한 어느 사업가를 빗대어 한 말이라고 한다. 키가 169㎝면 170㎝라고 올려 말하는 과장도 ‘남자 수학’의 한 사례라 설명하고 있다.

주변에 주식 투자를 한 지인의 말을 빌리면, 본전만 하면 언제든지 그만두겠다고 하는데, 그는 본전이 되었을 때도 주식을 팔지 않았다. 더 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 것인데, 결과적으로 다시 손해 상태로 본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경우도 ‘남자 수학’에 해당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여자 수학’은 “여자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20원짜리 물건을 10원에 사는 것이고, ‘남자 수학’은 꼭 필요한 10원짜리 물건을 20원에 사는 경우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지금 싸다고 사서도, 당장 꼭 필요한 물건을 비싸다고 안 사서도 안 되는 상황을 스스로 잘 통제하여 헤아리는 현명한 소비생활이 꼭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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