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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성비((時性費)’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4.08.05 09:45 수정 2024.08.05 09:54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가성비(價性費)’라는 말이 있다. ‘가격 대비 성능’이라는 뜻이다. 이는 지출한 가격에 비해 제품이나 서비스의 성능이 내게 얼마나 만족감을 주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그래서 가성비가 좋다고 하는 것은, ‘가격은 싸면서도 성능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뜻한다. 유사한 품질의 상품이라면, 가격이 더 저렴한 것이 가성비가 좋다고 할 수 있고, 같은 가격일 때는 성능이 우수한 상품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가성비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갓성비’라는 말도 생겨났다. 일반적인 경우보다 가성비가 특별히 뛰어날 때를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갓(god)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와 가성비의 뜻을 함축시킨 표현으로, 가성비가 단순히 좋은 수준이 아니라, 신이 내렸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매우 좋음을 이르는 말로 보인다. 신생어로 일상생활에서 쓰이고는 있지만 우리말로 정착되어 안정적으로 인정되는 낱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에 ‘시성비(時性費)’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때 시(時)자를 앞에 붙여 ‘시간+가성비’의 신조어라고 한다. 단순히 가격과 성능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변수가 주는 만족감까지 따져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즉, 시간 대비 성능을 추구하는 심리 형태로, 가격 대비 성능을 중시한다는 뜻의 가성비만으로는 사람들의 만족감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은 다른 어떤 것의 가치보다 시간의 가치를 더 중요시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가격이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던 때를 지나 시간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만큼 시간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내일부터 차 기름값이 오른다고 할 때, 오늘 내 차에 기름을 가득 넣으려고 조금 멀리까지라도 가서 긴 줄을 감수하고 기다렸다가 주유 후 돌아올 때 기분이 좋다면, 그것은 가성비 측면에서는 만족할 수 있을지언정 ‘시성비’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물론 평소의 퇴근길에 값싼 주유소가 있는 경우, 기다리는 앞차가 없어 즉시 주유하였다면 ‘가성비’와 ‘시성비’ 둘 다 만족하는 예가 될 것이다. 

또 백화점 세일 기간에 멀리까지 차를 운전하여 오랜 시간 주차 대란을 겪고 물건을 사 왔을 경우, 물론 평소보다 싸게 사 오긴 했지만 거의 하루종일 걸렸다면, 비록 ‘가성비’는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시성비’ 측면에서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평소보다 싸게 물건을 샀을지라도 오가면서 허비한 시간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가성비’만 신경을 쓴 나머지 ‘시성비’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간 대비 가치가 있는 소비인지를 간과하는 경우다. 싼 주유소를 찾아다니느라 허비한 시간이나 그 주유소를 찾기 위한 운행으로 소비한 기름값을 ‘제로(0)’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다는 뜻이다. 그런 시간을 아껴서 조금 비싸더라도 가까운 곳에서 주유하고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백화점 세일 기간에 쓴 나의 시간을, 더 중요한 곳에 써보지 못하고, 한꺼번에 너무 많이 허비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가성비’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비록 조금 비싸더라도 직접 장을 보러 가는 시간을 절약하여 인터넷으로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주문한다든지, 몇 %의 수수료를 물더라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구매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의 추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바쁜 일상 가운데, 가사 노동에 소비하는 시간을 줄여주는 제품 매출이 증가하는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시성비’ 중시 경향은 특히 문화 분야에서 확산하고 있다고 하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필자는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틱톡이나 유튜브같이 1분 내외로 제작되는 ‘쇼트폼’영상이라고 생각한다. 결론만 알면 된다는 생각에, 약간의 재미를 곁들인 시대적 트렌드로 보인다. 길면 안 된다는 식의 ‘짧은 시간’중심의 사고방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그래서 ‘10초 건너뛰기’나 ‘2배속’으로 영상을 시청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하고, 내용의 핵심만을 모아놓은 요약본이 오히려 하나의 시청 방법으로 소개되고 있다고도 한다. ‘오디오북’이라는 콘텐츠로 책읽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서비스가 인기를 끄는 것도 모두 시간을 아끼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필자는 ‘가성비’가 지금까지 우리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대적 흐름의 변화 속에 이제는 비용보다는 오히려 ‘시간’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본다. ‘분·초 사회’라는 낱말이 최근 등장하여 시간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듯이 앞으로는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새로운 흐름이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중요시하는 ‘시성비’를 생각하며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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