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
|
만언봉사(萬言封事)는 율곡 이이가 1573년 선조 6년에 일만 글자의 상소를 오직 임금만이 볼 수 있도록 밀봉하여 올린 상소문이다. 율곡은 13세에 진사시에 합격했고 대과에 응시하여 9번 합격했으며 그 중에 7번은 장원(1등)했다. 율곡은 불교에 출가하기도 했으며 그의 과거 답안지에는 놀라운 천재성이 담겼다. 어려운 문제를 마주해 신속하게 문장을 엮어내는 능력은 인간의 솜씨가 아니다. 율곡은 1537년 강원 강릉에서 탄생해 47세를 살았다. 17년 공직생활을 하면서 124회 상소를 올렸다.
선조 6년에 태양을 향해 흰색 무지개가 떴다. 이는 전쟁을 예보하는 흉조라고 해 신하들에게 자신의 통치에 대해 꺼리낌없이 의견을 내라고 하였다. 이 때에 정3품의 동부승지였던 38세 율곡은 만이천 글자의 상소문을 올렸다. 이조는 1498년 무호사화를 겪었고, 1504년 갑자사화, 1519년 기묘사화, 1545년 을사사화를 거친 후였다. 사화가 일어나면 문장 하나가 문제가 돼 목이 잘리고 일가가 폐족되었다. 아무리 임금이 책임을 묻지않겠다고 하지만 임금의 잘 못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리는 일은 목숨을 내놓고 붓을 잡는 일이였다.
그러나 율곡이 올린 이 상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사직 할 뜻을 밝혔으나 선조는 허락하지 않고 율곡을 황해도 관찰사로 제수했다. 처가가 있는 곳이였으며 승진된 종 2품의 자리였으나 이듬 해에 은퇴를 결심하고 관직을 버리고 파주 향리로 낙향했다. 만언봉사의 전반부는 7가지 현실 문제를 진단했다. 첫째, 위와 아래가 서로 믿지 않는다. 둘째, 신하들이 일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셋째, 경연(經筵)에서 성취되는 일이 없다. 넷째, 현명한 사람을 뽑아 사용하지 않는다. 다섯째, 재변(災變)을 당해도 구재 할 대책이 없다. 여섯째, 여러가지 정책에 백성을 구제하는 실상(實相)이 없다. 일곱째, 사람의 마음이 선을 지향하는 실상이 없다.
이같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먼저 임금이 스스로 수양해야 한다. 다음으로 밖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율곡은 마지막 부분에 자신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정을 개혁하면 3년 이내에 새로운 나라가 될 것이라고 장담을 했다. 그렇게 되지않을 경우 자신을 기망의 죄로 다스려줄 것을 요청했다. 이 상소를 거부한 조선 조정은 19년 만에 임진왜란을 당했다. 율곡의 만언봉사와 십만 양병설의 충언을 무시하고 당쟁과 사욕에 빠져 있던 조정은 처참한 전란을 겪었다.
만언봉사에는 선조의 통치에 대해 정면으로 지적하기를 "조선은 하루가 다르게 붕괴되어가는 한 채의 집입니다. 지금 나라는 나라가 아닙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근신(近臣)보다 더 가까운 신하가 없는데도 환관을 사사로운 신하로 삼고 계시며 만백성보다 더 많은 백성이 없는데도 내시들로 사사로운 백성을 삼고 계십니다." 칼로 찌르는 듯한 직언이 였다. 임금을 능멸하는 망언이 될 수도 있었다. 임금의 역린을 건드려 참수를 당할 수도 있었다. 임금은 침묵해도 간신들 주청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율곡은 이대로 가면 10년 내에 화란이 일어난다고 예언했다. 나라가 집과 같이 무너지고 있다. 이건 나라가 아니다. 신하 대신 환관 말만 듣고 백성 대신 내시를 거느리고 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곧 망한다고 외쳤다. 유학의 선비로 멸사봉공의 정치인으로 공무를 수행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 제77조의 통치 행위인지 형법 제87조의 내란죄에 해당하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국회 탄핵 소추안 통과와 동시에 대통령 업무는 중단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에 놓고 있다.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는 여의도 시위와 반대하는 광화문 시위는 서로 격렬한 충돌을 하고 있다. 네편 내편의 진영에 포위되지 말고 나라의 장래를 위해 당의 대표와 나라의 대통령에게 "이래서는 안됩니다. 이게 당입니까. 이게 나라입니까. 이러다가는 다 망합니다. 이렇게 가야합니다"목숨 걸고 직언 상소를 할 율곡 같은 당직자와 국무위원이 없단 말인가. 계엄의 원인 제공을 민주당이 했다면 특검 재청과 탄핵 남발, 예산 폭감, 종북 좌익 등 의회 독재에 항거하는 열사가 민주당에서 나와야 했다. 비상계엄이 내란 행위가 된다면 대통령을 가로 막고 선포를 할려면 내 목을 베고 가라고 결사 항의 해야 했다.
배움과 경험이 출중한 인사들이 판단을 못한 것은 아닐테고 졸장부라 의지가 약해 행동은 못하고 목이 날아 갈 가봐 기회주의 눈치만 보고 있다가 이렇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다행이 의회독재로 국정에 큰 사고가 터지거나, 비상계엄으로 큰 사변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헌재 심판을 통해 대통령도 갈아 치우고, 법원 판결을 통해 민주당 대표도 감옥에 보낼 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 더 역사를 후퇴시키지 말고, 부디 국회 입법독재도 대통령 비상계엄도 없는 새로운 정치의 장에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천지신명께 빌고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