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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고양이와 달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10.12 13:55 수정 2017.10.12 13:55

우리 사회는 여·야 관계, 사람끼리 관계는 살벌하기 짝이 없지만, 의외로 동물들(개, 고양이)에게는 관대하다. 가로수 옆을 지나며 건강산책을 하다 보면 가로수 밑에 차려 놓은 고양이 밥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고양이 밥상을 진설하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고, 고양이뿐 아니라 사람도 배려하는 착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이런 착한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희망이 있고 절망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착각(?)이 든다. 필자는 개를 45년동안 계속 기르고 있지만 고양이를 키운 것은 딱 한 번이 고작이다. 들고양이가 제 발로 우리 집을 찾아와 자연스럽게 집고양이가 되었다. 우리 집 고양이 이름은 야옹이가 아닌 애용이다. 딴 고양이들은 야옹야옹하는데, 우리집 고양이는 ‘애용 애용’하여 애용이라 불렀다. 고양이 밥을 주기 위해 ‘애용아’ 하고 부르면 멀리서 용하게 알아듣고 달려와 먹이를 깨끗하게 비웠다. 애용이는 잿빛 토끼같이 건장했고, 고양이 꼬리가 토실토실하여 귀부인의 목도리 같이 품위가 있어 보였다. 그 기름지고 멋진 꼬리를 앉을 때는 착 접고 앉아 앉음새가 매우 단정해 보였다. 고양이는 장소(주인)에 대한 애착이 전혀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놓는다. 귀엽고 건강하던 우리 집 애용이도 딴 집 고양이처럼 성묘(成苗)가 되어 우리 집을 떠나버려 야옹 아닌, 독특한 울음 ‘애용’ 소리를 듣지 못해 ‘애용이’의 근황이 궁금하기조차 했다. 고양이를 집에 잡아두는 방법은 어려서부터 목줄을 매어 기르는 방법밖에 딴 도리는 없다. 2002년 추석날, 날이 환하게 마당과 라일락나무를 점호하는 밤, 가까이서 애용!애용! 하는 애용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추석 때 객지에 갔던 자녀들이 고향 집을 찾아오듯 애용이도 반가운 귀성을 했다. 반 년 이상을 못 봤는데 애용이는 건장한 고양이가 되어 금의환향을 한 것이다. 온 가족들이 애용을 반기며, 진수성찬(?)을 대접했다. 애용이는 우리 집에 이틀 동안 머물다가 온다간다는 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버렸다. 애용이 생각이 짠하였지만 바쁜 일상 속에 묻혀 애용이 생각이 희미해지며 설을 맞고 달 밝은 정원대보름을 맞았다. 달이 환하여 우리 집을 비추자, 애용! 애용! 하는 애용이의 귀 익은 인사소리가 들렸다. 애용이는 애묘(愛描)의 경지를 넘어 신묘(新描)라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는 달력도 없는데, 어찌 명절을 잘 알고 옛 집을 찾는 걸까? 우선 신통방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달이 원만한 둥근 달이 뜨면, 사람뿐 아니라 짐승도 귀소본능(歸巢本能 )이 살아나 옛 집(고향)을 찾게 되는 것이다. 정월대보름날 찾아온 애용이는 추석날 찾아온 애용이가 아니었다, 몸집도 더 다부져졌고, 멋진 청년무사가 되어 있었다. 애용이 덕분에 우리 식구들은 더 뜻 깊은 정월대보름이 되었다. 추석 때처럼 애용이는 이틀 있다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 식구들은 애용이가 보고 싶었지만 팔월 한가위 밤을 손꼽아 기다려야 했다. 애용이의 특별방문이 기특하여 더욱 추석이 기다려졌다. 2003년 9월12일 추석날, 태풍 매미가 기습하여 폭우가 쏟아지고 강풍이 불어 애용이의 숙소가 되어 주던 20년생 라일락 나무를 강풍이 부러뜨렸다. 하늘엔 먹구름이 끼고 한가위달도 도망가 버렸다. 귀소본능의 진원인 보름달이 실종되자, 나침판 잃은 나그네 신세가 되어 기다리던 애용이 방문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날 불던 태풍매미는 1959년의 사라호 태풍에 이어, 두 번째로 강력한 태풍으로 매미는 악명을 자랑했다. 태풍 ‘매미’의 ‘매미’는 북한이 붙인 이름이다. 북한이 이름을 붙여서일까? 태풍 매미는 온 나라를 강타했다. 다음해 정월대보름날 애용이를 다시 만나겠다는 설레임 속에 기다렸지만 2004년 정월대보름날 애용이는 끝내 나타나지를 않았다.들고양이를 포살(捕殺)하는 경우가 많아, 애용이가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들고양이들은 굶주리면 같은 고양이끼리 잡아먹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이다. 애용이 때문에 필자는 마음으로 들고양이 보호협회 회장이 되었다. 집에서, 길거리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을 눈여겨보며 야옹아! 하고 멋쩍게 불러본다. 고양이만 고양이과에 속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멸종 위기의 호랑이도 고양이과에 딸렸다. 담 위를 평지 걷듯 뛰어다니는 고양이를 보면 유연성이 올림픽 메달 수상 체조선수보다 뛰어난 것 같다. 애용이와 못 잊을 추억이 있기에 들고양이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더듬는다. 들고양이에게 물을 주고, 먹이를 주는 따뜻한 마음의 이웃들이 고양이 사랑을 통해 이웃사랑, 나라사랑까지 실천하여 고양이와 사람들이 다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고양이에게 급식(給食 ) 공덕을 실천하는 따뜻한 손길에 신의 축복이 있을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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