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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물엿’의 행복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10.24 13:31 수정 2017.10.24 13:31

중등교원(교사.교감.교장)으로 만 34년 6월을 근속했지만, 약을 먹고 출근하여, 평교사시절에 수업을 단 한 시간도 빼먹지 않았다. 1982년 11월, 문경고등학교 교사시절엔 식중독으로 호흡조차 거북했지만, 퇴원한 뒤 하루밤 서울의원에 입원하여 주사를 맞고, 안정을 회복하여, 그 이튿날 일어나서 아침밥도 들지 않은채 출근했다. 입원할 때,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지만, 내발로 걸어갔고, 교회목사님을 청하여 기도를 받으라고 했지만, 평소 목사님과 가까이 지내지도 않으면서, 내가 위급하다고, 목사님을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죽더라도 대장부답게 소신을 굽히지 않고 죽을 각오였다. 그 때 내 나이는 만40세였다. 맏딸애가 국교(초교)1학년이었다. 내가 죽으면, 가족들의 생계가 큰 문제였다. 재산이라곤 내가 교사가 되어 마련한 논 700평밖에 없었다. 문학가(시인)가 된지, 만 15년이 넘었지만, 경상북도 문화상(문학부분)도 타지 못했다. 자작시집은 다섯권을 냈다. 1982년 가을의 위기를 극복하고, 1982년 12월엔 문교부장관상을 받았고, 1983년 11월엔 경상북도 문화상(문학부분)을 받아, 문학에 대한 조그만 꿈도 이루게 됐다. 중등교원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1987년 호계중학교 교사로 3학년 2반 학급담임을 할 때였다. 아침7시에 집을 나와, 밤10시에 귀가했다. 하루 15시간을 직장에서 보냈다. 저녁밥은 밤 10시가 넘어 먹어서 소화가 되기전에 잠자리에 들어, 소화가 잘 안되고, 운동부족으로 고약한 병인 변비증에 시달렸다.시골중학생이라 지적수준도 낮은 애들(학생)을 이른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교실에 붙들어 두어야 하니, 교사들도 과로에 시달렸지만, 중학생(3학년)들도 죽을 지경이었다. 교사나 학생들이 늦게까지 남아, 자율(?)학습을 한다지만, 처음부터 능률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어느날 아침 아내가 퇴근길에 물엿 한병을 사오라고 주문을 했다. 내가 까먹을까봐 학교로 다시 전화를 했지만, 결국 그 날 퇴근길에 물엿 한 병 사오는 걸 잊고 말았다. 그만큼 그 때는 너무 바빠 정신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물엿’이란 명쾌한 시 한편을 낚았다. 대어(大漁)급 시로, 때 맞춰 시전문잡지‘심상’으로부터 시청탁서가 도착하여, ‘심상’에 발표가 되고, 다음달 ‘심상’에, 자작시 ‘물엿’이 문제작으로 떠올라 주목을 받았다. 시‘물엿’은 30년이 지난 근년, TBC라디오 시낭송 프로그램에 황인숙시인이 낭독하여, 다시 독자들의 반응이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다고 한다. 하루 종일 물엿이 된 30년 전 세월이 결코 헛고생만 한 게 아니라, 내 내면은 옹골차게 결실을 했던 것이다.종시(拙時)물엿을 선보여, 애독자들과 감동을 공유하고자 한다. 나는 교직(敎職)이 너무 힘들어, 우리집 자녀 중엔 일부러 교사를 한명도 시키지 않았다.(시)물엿/김시종//모처럼 아내가 학교로 전화를 했다//“퇴근할 때 잊지 말고 물엿 한 병 사오세요”/잊지 말고 물엿 한병, 물엿 한병…염불처럼 뇌다가/정작 퇴근할 때는 물엿 한병 사는 걸 까먹고 말았다.//퇴근하여 대문에 들어서기 바쁘게/아내의 눈빛은 순연한 물엿 빛이었다.//아침 7시, 가출하듯 허겁지겁 집을 나와/물엿이 되어 밤10시에 귀가를 한다./하루 꼬박 15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매양 물엿이 되어 돌아온다.//여보, 미안해요./물엿 한병은 깜빡 잊고 못 사왔지만/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70kg짜리 물엿 한 독이/오늘도 탈 없이 굴러 집으로 돌아왔소.//여보, 고맙구려./오늘 나 자신이 바로 더도 덜도 아닌/물엿이란 사실을 일깨워 준 당신이 정말 고맙소.//(심상, 1987년 호계중교사 시절)요사이 젊은 청년들은 일터가 없는 백수(白手)가 겁나게 많다. 그 전에 ‘물엿’이 되어, 말단교사로 죽살이를 쳤지만, 요사이 젊은이들은, 직장을 얻어, 자진하여 ‘물엿’이 되고 싶을 터이다. 직장이 있어, 열심히 사는 것은 ‘물엿’의 행복이 아닐까.요사이 신문에 가장 유행하는 어휘는 ‘적폐청산’인데, 적폐중 최대의 적폐는, 청년실업, 고질적인 청년실업이 이 시대의 진짜 적폐라고 할 수 있다. 현정부는 대오각성하여, 이 시대의 진짜 적폐인 청년실업문제를 화끈하게 해결해주시기를 주문드린다. 하늘이여! 이 땅의 젊은 백수(白手)들에게, 생존의 원천인 일터를 만들어 주소서. 희망을 하사(下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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