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칼럼

정치인 여러분! ‘당신의 변명지수는 얼마 입니까?’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10.25 10:38 수정 2017.10.25 10:38

대영제국에서는 정치적지도자라면 반드시 본받아야 할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82년에 아르헨티나군이 포클랜드섬을 점령하여 포클랜드전쟁이 일어났을 때였다. 영국의 의회는 물론이요 일반 여론도 맹렬히 정부를 비난했다. 왜 아르헨티나에 있는 영국대사관은 사전에 그런 사태가 벌어질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비난의 화살은 당시의 외무부장관 피터 캐링턴 경(卿)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이 일어나기 한 달 전부터 외유(外游) 중이었으며 현지 대사관은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는 “나는 책임이 없다”고 얼마든지 발뺌을 하고 아랫사람들만을 문책하는 것으로 악화된 여론을 무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고 혼자 모든 책임을 지면서 스스로 사표를 제출하고 정부를 떠났다. 그러자 그때까지 그를 비난해오던 여론이 일변하고 그를 동정하고 오히려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는 일화다. 너무나도 우리와는 대조가 되는 부러운 얘기다. 가령 전쟁터에서는 나팔수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진격나팔을 분다. 이리하여 전투가 벌어졌으나 나팔수 편이 지고 나팔수도 적군의 포로가 되었다. 나팔수는 적군의 지휘관에게 애원했다. “저에게는 아무 죄가 없으니 제발 저를 죽이지 마십시오. 저는 그저 이처럼 무기도 안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적군의 지휘관은 이 말을 듣자마자 다음과 같이 호통 쳤다. “너는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다른 병사들을 죽게 하였으며 또한 병사들이 죽을수 있도록 고무하고 독려했으니 만큼 그 죄질은 결코 가볍지 않다.”며 엄하게 처벌했다. 이솝의 우화다. 윗사람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해서 책임을 모면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명령을 직접 내린 사람에게 있다. 그러나 명령을 내린 사람에 못지않게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명령을 집행한 하수인이다. 어려운 일인지는 몰라도 그에게는 명령을 거역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솝에서는 이런 우화도 있다. 배가 태풍을 만나 난파당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한 사람이 해변 가에서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있었다. 한참 후에야 정신이 든 그는 일어나서 바다를 향해 소리 질렀다. “당신은 평소에는 제법 너그러운 듯이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사람들을 바다로 유혹하고는 갑자기 표변하여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을 파멸시켰다.” 그러자 바다는 여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서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정말로 원망해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니라 바람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천성이 당신이 지금 보고 있듯이 가냘프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갑자기 저에게 엄습하여 와서 심하게 물결치게 만들고 거칠게 만든 것이 랍니다.” 이솝은 바다보다도 바람이 나쁘다고 말하려 했는지, 아니면 책임을 바람에 돌리는 바다를 비웃으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그 판단을 짓궂게도 듣는 사람에게 맡기고 있다. 우리나라의 형법에서도 어떻게 되어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떤 범죄를 사주하기만 하고 범행에는 직접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해서 죄를 모면하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그저 명령을 따라 했을 뿐이라고 해서 명령자보다 형이 더 가벼워질 수는 없다 영국의 일화에 견주어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정책을 잘못 세우고 정치를 그르쳐도 책임을 느끼고 제발로 걸어 나간 장관이나 국무총리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국민들은 생각하기를 그저 대통령의 뜻에 따라 비위만 맞추는, 무책임하고 비굴한 하수인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왜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모두 이 모양 일까요. 정권이 바뀔 만한 엄청난 잘못을 저질러 놓고서도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어느 장관도 누구 하나 사표는커녕 책임지겠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내 몰라라하는 정치인들뿐이다. 사표를 낼 자유가 없어서인가 아니면 체내에 아예 책임지는 DNA가 없어서일까? 가끔은 국민을 감동시키는 화끈한 정치인, 멋진 지도자를 국민들은 학수고대 하고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정치인의 변명지수가 좌우한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정치인들의 변명지수를 체계화하고 높혀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 든다. 일 잘하는 국회의원과 일 못하는 국회의원의 차이가 이렇게 무색해서야 나라가 온전하겠는가? 돌아오는 지방자치선거에서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약속한 말은 책임지는 그런 멋진 후보가 많이 당선했으면 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당직후보자 여러분! 당신의 변명지수는 얼마입니까?


저작권자 세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