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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안진우 기자 입력 2018.03.26 17:35 수정 2018.03.26 17:35

①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구약성서 전도서 11장 1절)
②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누어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구약성서 전도서 11장 2절)

고대 바빌론 문명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의 산물이요, 선물이다.
옛날 바빌론 왕자가 날씨가 더워, 유프라테스강에 나가 물놀이를 즐기며 더위를 물리쳤다.
그 때 갑자기 강물이 불어나 물놀이 하던 왕자는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았다. 왕궁에선 큰 소동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장차 왕위를 이을 왕자가 갑자기 밀어닥친 흙탕물에 휩싸여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말이다. 홍수가 끝나도 왕자가 돌아오지 않으니, 성급한 왕이 아니더라도 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자의 시체를 수습하여 오는 자에겐 큰 상을 내리겠다고 전국에 포고령을 내렸다.
왕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급작스런 큰 물의 기습으로 왕자는 물살에 밀려, 강 아래로 떠내려가게 됐다. 워낙 큰 물결이라 헤엄을 좀 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왕자는 물에 떠내려오는 큰 나무토막을 올라타고 물결따라 떠내려가게 됐다.
왕자의 눈에 보이는 것은 붉은 흙탕물 밖에 없다. 땡볕에 시달리고, 배고픔을 억지로 견디며 나무토막에 의지하여 떠내려가고 있는데, 눈 앞에 갑자니 물에 다 잠기지 않은 널찍한 바위가 보이는게 아닌가. 왕자는 안간힘을 다해 가까스로 바위섬에 안착(安着)했다. 목마름은 바위 옆으로 흘러가는 강물을 마셔 해결(해갈)했지만, 바위 위엔 풀 한 포기 없으니, 배고픔은 그대로 였다. 아쉬운대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큰 물이 언제 그칠지, 여러날 굶고 살아 남을 수 있을지 난감하기만 했다.
왕자는 청년이 될 때까지 배고픔이 무언지도 모르며 포시럽게 살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유프라테스강 바위섬의 왕자에게도 있었다.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커다란 빵덩어리가 바위섬으로 떠내려왔다. 왕자는 하늘의 도움이라 생각하고 빵덩어리를 건졌다. 자세히 보니 빵에는 사람이름과 주소가 적혀있었다. 굶어 죽기 직전에 건진 생명의 빵! 생명의 빵에 새겨진 주소와 이름은 왕자의 머릿속 깊숙이 입력이 되었다. 강물에 떠내려 오는 빵은 왕자가 바위섬에 머물 동안 계속 하루 한 개씩 떠내려와, 왕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주었다.
홍수도 끝나고 강물도 줄어들어 왕자는 바빌론 왕궁으로 살아 돌아왔다. 왕자의 시체나 수습하려고, 신고자를 눈 빠지게 기다리던 부왕(父王)은 왕자에게 물었다. 매일 빵을 흘려보낸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기억하고 있느냐? 왕자는 주소와 사람이름을 즉각 왕에게 아뢰었다. 매일 바위섬 옆으로 생명의 빵을 던진 사람은, 유프라테스강 상류에 살던 어부임이 밝혀졌다.
그 어부는 왜 소중한 큰 빵을 강물에 던졌을까?
‘너는 네 떡(빵)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는 명언(전도서)의 실효성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호기심이 많은 그 어부는 자기가 던진 빵이 자기에게 되돌아오게 됐다. 왕자를 살린 공을 세웠다하여 바빌론궁으로 초대되어 왕으로부터 큰 포상을 받게 되었다.
지금 이 땅 주민들은 과잉복지로 큰 혜택을 받고 있지만, 국가에서 잘 챙겨줄수록 고마운 마음보다 불평만 더하고 있으니, 무상복지에 대해 고마움을 알아야할 것이다. 정부도 과잉복지는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복지과잉의 여독으로 국민의 자립정신을 약화시켜선 안 된다.
진정한 복지는 국민에게 무제한, 무기한으로 생선을 지급하는게 아니다. 국민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어, 각자가 필요할 때 자급자족하게 해야 참 된 복지가 되는 것이다.
(2017. 9. 15, 10시 19분)

▲ 김 시 종 시인 /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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