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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옛날이여, 목련꽃이여……

안진우 기자 입력 2018.04.02 19:05 수정 2018.04.02 19:05

오늘(2018년 3월 31일), 활짝 핀(만개한) 우리집 목련꽃을 보니, 청년교사시절(1975년 문경중,고 교사 재직) 당시 문경군 점촌읍 중앙통에 있던 엄규한 중앙당 시계포 사장님댁 사제에 만개했던 백목련꽃이 눈 앞에 나타난다.
벌써 43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 때는 지금보다 못 살던 시절이 되어, 목련꽃이 널리 보급되지 못했고, 목련나무를 심은 집도 드물었다. 백목련꽃은 왕자같이 의젓하고, 공주같이 화사한 느낌을 주었다. 그 날 만개한 거탑같이 우람한 백목련나무의 셀 수 없이 많은 흰 촛불의 조명을 받으며 30대초의 남편(나)과 20대말의 아내가 있는 소중한 현실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기술의 한계 때문에 실제로 느꼈던 감명이 재생되지 않았다. 밝은 양초같은 목련꽃송아리가 사진속에는 성냥 알갱이같이 잘아 빠졌다.
오늘 12시경 엄규한 사장님의 조카인 현재 중앙당 시계방의 엄사장을 만났다. 현재 중앙당 시계방의 엄사장은 나의 산북중학교 교사시절 제자다. 제자와 대화를 통해, 엄규한 사장님은 2년전 89세의 노령으로, 노환으로 작고 하셨단다. 생전에 엄규한 사장님은, 사업가로서도 양심적인 분이셨지만, 한학에 조예가 깊으시고 한시 창작과 서예에 뛰어나셨고, 나보다 14세나 연상이시면서도, 시를 짓는 시인라고 필자를 아껴주시고 파격적인 예우를 해주셔서 겸손함이 돋보이셨다. 엄규한 사장님은 이태전에 돌아가셨지만, 고택(古宅)은 아직도 유족들이 거처하시고, 그젯날의 신화(神話)를 지닌 목련나무도 아직 그대로 잘 가꾸고 있다기에, 곧 바로 옛날의 그 집-목련꽃의 궁궐을 다시 찾았다.
집은 낡았지만, 목련나무는 가지치기를 하여 옛날보다 몸집은 줄어들었지만. 흰 목련이 건강하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맞아주어, 43년전의 감동을 오늘도 벅차게 느꼈다. 흰 목련나무 밑에 있던 별당에는 당시 나의 문경중학교 제자이던 봉종기군(문경중 25회 졸업생)이 형과 같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단촐하게 살았다. 봉종기군의 어머니는 청상으로 한복 삯바느질을 하여, 두 아들을 양육하고 있었다. 봉종기군의 어머니는 바로 지붕 위의 흰 목련꽃을 닮아 우아한 여성이요, 어지신 어머니셨다. 다행히 봉종기군 형제는 자수성가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고, 어머니도 요양원에 계신다.
나는 지금가지 목련에 대해, 명시(名詩)를 여러편 지어, 전통있는 문예지에 발표했지만, 목련꽃에 대한 예찬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더욱 기도하기는 우리 가족들도 목련꽃처럼 건강하고, 화사하기를 빈다.

▲ 김 시 종 시인 / 한국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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