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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가면 동백꽃을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05.09 19:17 수정 2018.05.09 19:17

제주도의 4월은 동백꽃이 지는 계절이다. 그런데 동백꽃은 지고 있지만 동백 이야기는 만발한다. 4·3사건 70주년 맞아 관광객에게 ‘동백꽃 배지’ 달아주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지난 3월21일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등이 제주 공항에서 관광객들에게 동백꽃 배지를 달아주는 것을 시작으로 4·3을 전국적으로 알리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동백꽃은 생명력이 다하면 어느 순간 빨간색 꽃잎이 싱싱한 채로 뚝 떨어진다. 동백나무가 있는 제주도 시골 마을에선 아침에 그렇게 떨어진 꽃이 땅바닥에 빨갛게 나뒹굴었다. 그래서 동백꽃은 질 때 뭔가를 다 소모하지 못한 여운을 남긴다.      
올해 4월 3일은 제주 4·3사건 70주년이다. 4·3사건이 일어난 1948년 태어났던 아기는 이제 백발의 70세가 되었다. 그때 참혹한 킬링필드(Killing Field)의 현장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제주도 인구의 5%나 될까.
하지만 그 세대가 겪었던 악몽과 트라우마는 DNA처럼 대를 이어 주민들의 심리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70이란 숫자와 정치적 분위기가 결합한 탓이지 올해 4·3사건 70주년은 어느 해보다 조명을 받으며 전국적인 관심을 끄는 것 같다. 한라산 기슭의 4·3평화공원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정부 요인과 정치권 인사들이 모여들면 추념 분위기는 더욱 고조될 것이다.
4·3은 해방 공간, 즉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기 전 이념 논쟁으로 좌익 계열 무장대의 관공서 습격과 이에 대응한 군경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 과정에서 대량학살(Genocide)이 자행된 사건이다. 1999년 여야가 합의해 만든 4·3특별법에서 4·3 사건은 “1948년 3월1일부터 1954년 9월21일까지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규정되고 있다.
공식 등록된 희생자는 1만4000여 명이다. 사실 신고누락자가 많아서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군경 토벌대에 의한 희생자가 86%이고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가 14%다. 어린이, 여성, 노약자가 전체 희생자의 33%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4·3의 잔인성과 반인권성을 알 수 있다.
법률상 기간은 6년이지만 희생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은 1948년 가을 군경(軍警)의 제주도 초토화 작전을 벌인 몇 달여간이다.
1만 명 이상이 불과 몇 달 사이에 희생되었으니 당시 인구 20여만 명의 제주도는 그야말로 온 동네가 초상집이 되는 아비규환이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가족과 친척을 잃은 아픔 못지않게 반공 이데올로기와 연좌제에 의한 레드콤플렉스가 4·3 이후 반세기 동안 제주도 사람들의 마음에 치유하기 힘든 상흔을 남겼다.
10년 동안 6000명의 증언을 채록하며 취재했던 제주의 한 언론인은 이런 4·3 후유증을 “눈물도 죄가 되는 50년의 세월”이라고 술회했다. 4·3의 상흔이 왜 잘 치유되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나이 든 제주도 사람들은 동백꽃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4·3 사건을 떠올렸다. 그렇게 아름답게 피었던 꽃들이 한순간에 떨어져 땅에 나뒹구는 모습이 4·3 사건 때 젊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과 흡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관광지 제주도의 가치는 과거 농업 또는 제조업시대에 비해 현격히 높아졌다. 제주도에 가는 사람들은 서울 같은 대도시의 몰(沒)인간적 일상에서 일탈하고 싶어 한다.
치유와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다. 제주도는 단순한 경치를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안정 평화 치유의 땅으로 품질이 높아졌다. 여행자들이 제주도에 도착하는 순간 누군가로부터 꽃 한 송이를 받는다면 마음의 평화와 치유를 느끼지 않을까.
지금 한국 사회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 모르나 정신적으로는 황폐해졌다. 한시도 경계심을 내려놓고 여유롭게 살지 못하는 환경이다. 제주도가 이런 사람들에게 평화와 치유를 느끼게 한다면, 그건 한국을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이다. 꽃이 아니라도 방법은 많다.
제주도 사람들은 ‘1%의 한계’를 자주 말한다. 그렇지만 1%가 99%를 미소 짓게 할 수 있다면, 제주도는 고품격의 섬이 될 것이다.

▲ 김 수 종 /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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