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체연재 칼럼

오빠생각(1929년)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05.10 18:59 수정 2018.05.10 18:59

‘오빠생각’은 펜팔로 이원수 선생의 부인이 된 최순애 선생이 12세때 지은 동요다. 아동잡지에 발표된 ‘오빠 생각’을 일제 때 대구 계성학교(대구 계성고보 - 나중 대구계성중?고) 음악교사였던 박태준이 곡을 붙여, 당시 조선제일의 동요곡으로 군림하게 됐다.
거의 같은 무렵 15세의 이원수가 지은 동요 ‘고향의 봄’을 귀재였던 홍난파(홍영후)선생이 가락을 붙여, 심심하던 식민지 조선 어린이들을 입으로 화끈하게 달구고, 고향 사랑하는 마음을 뿌리깊게 심어주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오빠생각’과 ‘고향의 봄’이 앙상블을 이뤄 메아리치는 일제 식민지로 생지옥살이를 하던 이 땅 어린이들과 민초들에게 마음에 따뜻한 위안을 주었다.
필자도 대중가요를 부르는 노래판에서 지명을 받으면, 몇 천곡이 넘는 대중가요를 부르지 않고 ‘오빠생각’을 불러, 내 마음을 순수한 어린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최순애(오빠생각) 어린이와 이원수(고향의 봄) 소년은 펜팔(PENPAL)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아, 급기야 이 땅 최초의 동요시인 부부가 탄생된다. 동요시인 부부가 되었으니 시적(詩的)인 부부로 알콩달콩 재밌게 살았으면 좋았으련만, 최순애 여사는 남편 이원수 선생을 살면서 평가절하(?)한 것 같다.
평소 술을 즐기고 수입도 변변찮고(?), 변강쇠(?)같은 기질도 있는 남편 이원수에게, 최순애 여사는 ‘이원수야!’하고 부르는게 아니라 ‘이 웬수야!’하고 불렀다고, 문단(文壇)의 참새들이 짹짹거리는 것을 필자도 들어 익히 알고 있는터다.
두 분(이원수, 최순애)의 소문이야 어떻게 났던 ‘고향의 봄’과 ‘오빠생각’은 이 땅을 대표하는 동요 명곡(名曲)이다. 현실과 이상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의 절대불변의 철칙임을 명심하는게 덜 불행해지는 비결이다.
‘가요무대’를 평소 즐겨 시청하는 필자는 매주 월요일 1TV의 본방을 안 빼먹고 보는 것은 상식이요, 여러해 전의 가요무대 재방송도 기를 쓰고 놓치지 않는다. 가요무대 재방송을 통해 여류가수 김희진을 재발견하게 됐다.
지난 날의 분위기있는 가요를 감칠 맛 나게 잘 불러, 지난 날로 필자를 돌아가게 해주니 참 고마우신 가수 선생님이시다.
 지난 날 옥희가수가 불렀던 히트곡 ‘꽃반지 끼고’를 원창(原唱)가수 옥희씨보다 감칠 맛 나게 불러, 필자도 당장 꽃반지를 만들어 끼고 싶은 충동을 누를 수 없었다.
‘30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는 목로주점(이연실 작사?곡?노래)도 맛깔스럽게 잘 불러, 지난 날 이름있는 듀엣그룹의 여성멤버로서 진가(眞價)를 잘 보여준다. 가요무대 제작자도 계속 김희진 가수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국민정서를 제고하여 국민행복을 증진시켜 주시면 더 없이 고맙겠다.
노래는 선정(善政) 못잖게 우리 국민들에게 행복을 준다.
(2018년 5월 5일 13시38분)

▲ 김 시 종 시인 /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저작권자 세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