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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풍성한 이 가을 아침에, 따끈한 詩 한편의 여유를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6.09.06 19:32 수정 2016.09.06 19:32

오랜 시련 뒤에 찾아온 이 높은 가을 하늘, 아! 진정 이렇게 푸를 수도 있구나?한 남자의 감탄 속에서 풍기는 싱싱한 느낌표처럼, 산은 파란하늘에 떨다 뭉게구름으로 산자락을 감싸 안고 돌아눕습니다. 산이 정말 이렇게 바다 보다 푸를 수가 있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염색공장의 노련한 직공도 이런 푸른색을 만들어내려면 색향을 오래도록 연구해야 했을 것입니다. 푸른 신록 앞에, 한 남자가 느낌표처럼 모자를 벗고 서서, 오래도록 산정을 바라봅니다. 이것은 최승호 시인의 시 ‘은행나무’의 느낌표같이 전력을 다하여 절기를 넘어서는 산색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도 ‘느낌표’가 되어 마주보고 서 있는 풍경입니다. 영혼의 심사를 흔들어 깨워두고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가는 가을하늘을 한번 꽉 끌어안아 봅니다. 여기저기서 많은 아쉬움들이 천고의 고운 빛을 품고 비상을 준비 중입니다. 하늘과 경계가 맞닿으며 결실의 축복을 우리에게 예고합니다. 고단한 일상을 떠나서 오래전부터 시작된 절기의 소중함을 위해서라도 잠시나마 시와 함께 감동을 맞이해보고 싶은 마음은 어떨까요. ‘그대가 나를 불러 주었을 때, 나는 이름다운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 한 구절처럼 무거운 중압감과 철문처럼 굳게 닫힌 우리의 마음을 소리 없이 녹여 열어 주시면 안 될까요. 우리의 공영방송 KBS의 금년도의 화두가 감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주 방영되는 동행이 주는 감동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는 없습니다. 앨빈 토플러의 저서 ‘권력이동’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문명사의 전개과정에 따라 권력이 물리적 세계로부터 경제적 세계로, 다시 지식의 세계로 이동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아침에 필자는 또 다른 ‘감동’이라는 권력을 한번 생각해 볼까 합니다. 저는 토플러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또 다른 중대한 권력이 빠져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감동’이라는 큰 권력입니다. 감동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동만큼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감동에 이르기 위해서는 ‘진실’만이 가장 큰 자원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 다 부속물일 뿐입니다. 저는 제가 공부하는 시를 통해 늘 상 이 감동의 문제와 연결하여 생각합니다. 난폭한 세속사회 속에서 어찌 보면 나약하기 그지없는 것이 시詩라는 존재 같지만, 시야 말로 진실성에 토대를 둔 문학으로 감동을 자아내고자 하는 대표적 양식 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한편의 시를 읽고 감동을 받으면 하루를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한 달을, 한 해를 아니 전 생애를 아주 쉽게 살아 갈 수도 있다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한권의 시집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필자는 일주일을 아니 평생을 너끈하게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시의 감동은 혼란하고 힘든 생활을 활달하게 바꿔주고 웃음을 주고 또한 꿈과 희망과 기쁨을 나눠 줍니다. 시라는 존재가 현실적으로 물리적인 힘이나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속에 깃든 감동의 힘은 어떤 다른 힘 보다 세계와 시계의 한계를 무한하게 넓혀줍니다. 여러분들은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감동의 시세계 속으로 빠져든 경험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뜨거운 눈물로 가슴속을 흠뻑 적셔 주는 감동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너무나 차갑고 거칠어서 감동 할 것이 없는 그저 막가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삭막할까요. 이 세상에서 자주 감동하는 사람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는다면 이런 세상일수록 감동이 흠뻑 담긴 시를 꺼내 읽는 것만이 상책 아닐까요. 삶이 힘겹고 버겁다는 것은 단지 마음 탓 일 뿐입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면 오늘 조용히 한편의 시를 읊조려 보십시오. 아니 한권의 시집을 여유롭게 펼쳐보십시오. 진실한 세계를 갈구하며 감동의 순간을 고대하는 사람들이라면 시는 결코 배반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고단함과 조급함이 이런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보살피지 않으면 어느새 황폐해지고 우리의 내부는 자칫하면 동굴처럼 어두워집니다. 시는 이렇게 황폐해진 영혼을 살리는 작은 샘물이자 어두운 마음속을 밝히는 작은 등불 입니다. 저는 오늘 이 힘든 절기를 조간신문을 들추어 보면서 ‘어데 좋은 감동하나 없나?’ 찾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이 풍성한 가을의 절기를 보네는 방법으로 따끈한 좋은 시 한편을 읽어 보시라고 감히 권하고 싶습니다.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슬퍼했다던 윤동주 시인의 마음을 저는 오늘 또 한 번 생각합니다.배동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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