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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신라 천마총 새 단장, 국민들에게 다시 돌아온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07.25 14:43 수정 2018.07.25 14:43

천마총은 신라인의 손으로 빚었으나, 현대로 와서는 전 세계인의 보물이다. 신라인들의 빚은 손 솜씨는 흡사히 밀가루의 반죽을 만지듯, 금을 만졌다. 또한 그 어떤 화폭에도 그림을 그리는 솜씨도 마찬가지였다. 신라인들의 대표적인 솜씨가 우리들 앞에 나타난 것은, 천마총(天馬?)이다. 천마총은 처음엔 제155호 고분이었다. 1973년 당시 문화재관리국에 의한 발굴조사 결과, 무덤 안에서 자작나무껍질에 채색으로 천마(天馬)를 그린 말다래(障泥;국보 제207호)가 발견됨에 따라, 천마총이라고 명명됐다. 천마총은 거대한 봉토로 덮인 돌무지덧널무덤이다. 바닥지름은 47m, 높이는 12.7m이다. 천마총은 신라 22대 지증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이다. 신라시대 대표적인 돌무지 덧널무덤이다. 무덤의 축조방법은 먼저 지면을 고른 뒤 바깥둘레돌(外護石)을 돌렸다. 그 안에 점토와 자갈을 다져쌓기(版築)해서, 올린 후 여기에 덧널(木槨)을 동서방향으로 설치했다. 덧널 주위에 돌무지를 쌓은 뒤 봉토를 씌운 방식을 취했다. 덧널 위와 주변에는 지름 23.6m, 높이 7.5m 가량 돌을 쌓고, 표면에는 방수를 목적으로 점토를 발랐다.
이제 신라인들이 조성한 천마총을 다시 새 단장하여, 국민들 앞에 문을 열게 되었다. 경주시는 해방 이후 우리 손으로 발굴한 고분에서 처음으로 금관이 출토된,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 등 11,500여점의 귀중한 유물이 출토된 경주 천마총이 발굴된 지 45년 만에 재정비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국민들에게 다시 돌아온다. 경주시는 오는 27일 오후 2시 경주 대릉원 일원 천마총 현장에서 리모델링 준공식을 갖는다.
1973년 발굴 후 당시 고분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유일한 고분이었던 천마총이었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관람객의 안전성과 전시시설에 대한 보수?보강이 요구됐다. 지난해 8월부터 관람공간을 폐쇄하고,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11개월간 고분 내부 시설보수와 전시매체 및 전시내용 개선 작업이 진행됐다. 관람객들이 그동안 보아 왔던 적석 목곽부를 철저한 고증 자문으로 돌무지의 형태와 덧널의 구조를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천마총 목곽의 높이는 학계의 여러 의견이 있었다. 당시 발굴에 참가하였던 연구원들의 자문을 받아 2.3m의 높이의 단곽형 목곽으로 확정됐다. 전시공간도 기존의 목곽 앞쪽의 반구형태 관람 공간 외에 목곽 뒤의 일반인이 출입 못하던, 긴 설비 공간을 과감히 전시공간으로 확장 개선했다. 신라의 웅대한 고분문화와 마립간시대의 찬란한 유물들에 대한, 이해를 쉽게 했다. 시각적으로 바로 다가서도록 첨단 디지털 영상기기 등 다양한 전시매체로 연출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천마총의 상징인 천마도를 신라 마립간시대 제작기법과 원재질로 재현했다. 진품과 동일한 재질인 자작나무껍질과 천연염료로 ‘백화수피 천마도 말다래’를 당시 신라 장인이 막 제작한 모습으로 재현했다. 소장처인 국립경주박물관의 협조를 받아, 일반인이 잘 모르는 또 다른 천마도인 ‘죽제 금동천마문 말다래’도 관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상실된 부분을 최대한 그 모습대로 재현해,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전시공간에는 1970년대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의 최초 발굴에 참가한 故 김정기, 故 박지명, 김동현, 지건길, 최병현, 윤근일, 남시진, 소성옥 등 당시 연구원들의 업적을 기리는 코너를 마련해, 고고학사의 역사적 한 획을 그었던 천마총 발굴의 뜻 깊은 의미를 더했다.
우리 신라인들이 조성했으나, 우리들만의 국보가 아니다. 우리의 고고학?발굴사에 기록되었으나, 우리들만의 역사기록만이 아니다. 우리의 손으로 발굴했으나, 우리의 발굴 역사만이 아니다. 천마총은 어떤 의미에선, 어느 특정한 국적이 없는 소중한 문화재이다. 모든 문화재는 세월의 풍우에 취약하다. 이를 보호하고 지켜야할 책무만은 우리이다. 하지만 이젠 이를 조성한 신라인들을 대신하여, 세계로 문을 열, 책무는 우리들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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