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체연재 칼럼

죽은 매케인과 살아있는 트럼프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09.09 15:06 수정 2018.09.09 15:06

미국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죽음과 그 장례식에 대한 뉴스가 한국에도 적잖은 관심을 일으켰다. 특히 그의 장례식에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등 생존하는 역대 대통령들이 참석해서 마치 국장(國葬)을 치른 듯한 분위기였다지만, 이에 어울리지 않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장례식에 초대받지 못해 골프채를 메고 골프장에 갔다니 세계적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치적 가십 얘기를 떠나서도 존 매케인의 죽음은 한 시대를 음미해 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인가, 북베트남에 포로로 잡힌 미국 조종사가 석방교섭을 받았으나 동료보다 먼저 석방되어 나갈 수는 없다며 이 제의를 거절했다는 뉴스가 당시 한국인들에게 매우 신선하게 들렸던 적이 있었다.
그 포로가 바로 존 매케인이다. 매케인은 1967년 미 해군 조종사로 하노이 화력발전소 파괴 임무를 안고  출격했다가 지대공 미사일에 비행기 날개를 맞아 추락하자 비상 탈출했다. 그는 탈출할 때 양팔이 부러지고 오른쪽 다리가 심하게 부서진 상태에서 북베트남군의 전쟁 포로가 되어 고문과 구타로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북베트남은 선전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그의 전쟁범죄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고문했다. 매케인은 고통을 못 이겨 두 번 자살을 시도했다.
그가 전쟁 영웅으로 부각된 건 1968년 매케인의 아버지가 베트남전까지 총괄하는 미 태평양군 사령관에 임명되면서다.
북베트남군은 선전용으로 매케인에게 포로석방을 제의했으나 매케인은 이를 거절했다. 포로의 석방은 순서대로 해야 한다는 포로 전범 규정을 지킨 것은 그의 진정한 용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석방된 것은 1973년 3월이었다. 그는 5년여 동안 포로들 사이에 ‘하노이 힐튼’으로 불리던 전쟁포로 수용소에서 보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닉슨대통령과 레이건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포옹을 받았고, 미국의 언론은 그를 용기의 화신으로 칭송했다.
그러나 그는 정상적인 군인이 될 수 없었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고 팔을 머리 위로 올릴 수 없었다. 그는 해군의 길을 포기하기로 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1983년 미 하원의원이 된 후 재선됐고, 상원의원 6선을 기록하며 정계 거목이 됐다. 200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예비선거에서 조지 부시에게 패했고, 2008년 대통령 본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와 버락 오바마에게 패했다. 그는 가끔 공화당 주류에서 이탈하는 이단적 정치적 성향으로 수많은 화제를 뿌리면서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미국 정치에 끼쳤다.
존 매케인은 뇌종양으로 심하게 앓으면서도 자신의 장례식을 기획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을 초대 명단에 넣지 않았다. 그러나 두 전직 대통령 부시와 오바마에게는 추도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베트남 전쟁의 포로가 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던 전쟁 영웅 매케인. 부동산업자의 아들로 공적인 삶을 멀리하고 부와 호사스러움을 추구하고 거래의 명수를 자처했던 트럼프.
두 사람은 같은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소통하기 힘든 태생적 대척점을 이뤘다. 정치적 반대자끼리는 공감대를 찾기보다 갈등을 추구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2016년 대통령 선거전에서부터 두 사람은 반목을 드러냈다. 공화당 동지이자 전쟁영웅인 매케인을 향해 트럼프가 불을 질렀다. “포로가 무슨 영웅이냐”고 깎아내렸다.
매케인이 트럼프에 대해 결정적으로 정치적 혐오를 느낀 계기는 정책 노선이다. 트럼프가 “기후변화는 사기극”,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실수”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매케인의 성미도 급했다. 그는 선거 운동 중인 트럼프를 겨냥해 “트럼프는 대통령에 적합하지 않다. 그가 선거에 이기면 미국과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질 것이다”며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매케인 장례식에서 그의 딸 메건 매케인은 눈물의 추도사로 참석자들을 숙연케 했다고 한다.
“매케인의 미국은 다시 위대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항상 위대했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트럼프의 선거캠페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비꼬는 것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장례식장에 모인 미국의 지도자들에게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을 생각하며 공감을 일으켰던 연설로 전해진다. 장례식장에는 부통령과 비서실장 등 백악관 고위 참모, 딸 이방카 부부도 참석했다. 트럼프는 혼자 골프장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소외감을 느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속으로 앓던 이가 빠진 듯이 허전하지만 시원했을 수도 있다. 그게 권력의 세계 아닐까.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존 매케인 애도행사는 미국 시대의 장송곡”이라고 표현한 미국의 한 언론인의 글이 인상적이다.
존 매케인은 전후 미국의 힘이 절정일 때 살았고, 보다 개방적이고 민주화된 세계를 만드는 미국의 능력을 신봉했으며, 자유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지지했으나 이제 그런 장점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이 일어서고 미국의 힘은 결정력을 잃고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매케인이 국가를 위해 품었던 명예, 품위, 의무감 같은 것이 이제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는 상실감의 표현임을 멀리 한국서도 감지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은 잊히게 마련이다. 트럼프의 관심은 아마 죽은 매케인이 11월 중간선거를 비롯한 그의 정치 진로에 끼치는 영향일 것이다.

▲ 김 수 종 / 뉴스1 고문



저작권자 세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