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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은퇴’…‘살아있는 전설’로

뉴시스 기자 입력 2016.10.12 17:57 수정 2016.10.12 17:57

18년 전 맨발투혼…한국 첫 명예의 전당 입성18년 전 맨발투혼…한국 첫 명예의 전당 입성

1998년 7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갓 스무살을 넘긴 박세리는 외환위기로 시름에 빠져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겼다.모두가 포기하려는 순간 맨발 투혼으로 결국 우승까지 일궈낸 모습은 한국 스포츠사의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꼽힌다. 낯선 이국땅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하며 수많은 우승을 차지했다. 첫 우승 뒤 꼬박 10년 만에 한국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역사적인 순간도 맞았다. 그렇게 결코 짧지 않은 18년이라는 세월동안 필드를 누비며 한국 여자골프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였다. 한국여자골프의 살아있는 전설 박세리(38·하나금융그룹)가 현역으로는 마지막 필드에 선다.박세리는 13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에서 열리는 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1라운드 종료 후 선수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은퇴식을 치른다.◇골프여왕의 탄생…미국무대 6년 만에 20승 돌파= 초등학생 시절 육상선수로 전국대회에도 출전했던 박세리는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 아버지 박준철씨의 권유로 골프채를 쥐었다. 생소한 운동이었지만 뛰어난 운동 신경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또래 선수들 보다 월등한 기량을 갖추게 됐다.대전 갈마중 3학년이던 1992년 프로대회인 라일 앤드 스코트오픈에서 쟁쟁한 프로 언니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고교 1학년 때도 톰보이오픈을 정상을 밟아 아마추어와는 격을 달리했다.1996년 프로에 데뷔한 박세리는 그해 11개 대회에 출전해 4승을 거두고, 2위는 6차례 올랐다. 출전한 대회 모두 톱10에 들었다. 데뷔 첫 해 상금왕을 거머쥐었고 국내에는 더 이상 적수가 없었다.1997년 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에 응시한 박세리는 수석 합격하며 세계 최고 무대에 서게 됐다. 1998년 LPGA 투어에 뛰어든 박세리는 그해 5월 메이저대회 LPGA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신고한 뒤 7월에는 US여자오픈도 제패하며 역대 최초로 데뷔 2승을 모두 메이저대회 타이틀로 장식한 선수가 됐다. 그 해 2승을 더 보탠 박세리는 87만2170달러의 상금을 수확해 상금순위 2위에 올랐다. 박세리보다 눈부신 활약을 펼친 신인 선수는 없었다. 신인왕은 당연히 박세리의 차지였다.박세리에게 2년차 징크스란 없었다. 1999년에도 4승을 거두며 역대 최고의 여자골프 선수로 평가 받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통산 41승에 빛나는 카리 웹(호주)과 함께 '빅3'를 형성했다. 국민적 관심을 한 층 더 높아진 2000년에는 우승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1년에는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 여자오픈을 포함해 5승을 챙겼다.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2002년에도 LPGA 챔피언십을 비롯해 5승을 기록하며 통산 18승을 달성했다. 2003년 3승과 2004년 1승을 추가하며 통산 메이저대회 4승 포함 22승째를 거둔 박세리는 데뷔 7년 만에 명예의 전당 가입에 필요한 포인트(27점)를 채웠다.◇아시아 첫 명예의 전당 입성…제 2의 인생 준비= 박세리는 2004년 1승을 더하며 명예의 전당 입성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했다. 명실공이 세계 최고 무대에서 그 업적을 인정받게 됐다. 그러나 박세리는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나가는 대회마다 컷 탈락하며 좀처럼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다. 급기야 2005년에는 손가락 부상까지 겹치면서 시즌을 온전히 소화하지도 못했다. 그 사이 많은 한국 여자 선수들이 미국 무대에서 활약했다. 자연스럽게 박세리에 대한 관심도 이전만 못했다. 힘든 시기였지만 박세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2006년 메이저대회인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2007년에는 '현역 10시즌' 조건을 충족하며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한국인 최초이자 당시 역대 최연소(29세8개월10일) 기록도 함께 달성했다. 이후 2007년과 2010년 우승을 추가하며 통산 25승(메이저대회 5승)을 기록한 박세리는 2011년 이후로는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한국 선수들의 맏언니 노릇을 톡톡히 했다.올해 은퇴 계획을 밝힌 박세리는 지난 8월에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여자부 감독으로 참가해 박인비(28·KB금융)의 금메달을 이끌며 마지막까지 큰 족적을 남겼다.1990년대만 해도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스포츠였던 골프 종목에서 과감히 세계무대에 도전장을 던진 박세리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박세리를 통해 골프와 가까워졌고, LPGA 투어라는 더 큰 무대를 알게 됐다.어린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 선수들이 과감히 세계무대에 도전할 수 있도록 길을 텄다. 지금은 박세리를 롤 모델 삼아 꿈을 키운 수많은 '세리 키즈'가 세계 골프계를 호령하고 있다.박세리는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그런 그가 현역에서 물러나 제 2의 인생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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