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이 부검영장에 제한을 둬 논란을 일으키느냐. 법원이 스스로 역할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 "지난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서울고법 및 산하기관 대상)에서 새누리당 오신환 의원이 강형주 서울중앙지법원장에게 던진 질의다. 사안은 지난 9월25일 숨진 고(故) 백남기씨 부검에 대한 건.이 건은 '검·경의 부검영장 신청-> 법원 기각-> 재청구->법원 '조건부' 영장 발부'로 진행됐다. 결과론이지만 법원의 어정쩡한 결정은 이 사안에 대한 사회적 논란만 증폭시켰다. 시간을 돌려 다시 뜯어 보자.제 1단계.백씨가 숨지자마자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파악하겠다며 부검영장을 신청했다. 검찰 역시 경찰의 영장신청 1시간 만에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영장 신청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법원. 법원의 1차 판단은 '기각'이었다.시민단체 및 야당 측의 반응.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것은 유족이 동의하지 않는 상태에서 고인의 존엄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역시 법원이야말로 인권수호 최후의 보루다." 법원이 우쭐할 만한 찬사가 쏟아졌다. 제 2단계.검경이 법원의 기각 판단에 불복, 부검영장을 재청구했다. 법원은 애초 방침에서 선회해 '조건부'로 영장을 발부했다. 다만 유족의 의사를 확인해 부검장소를 서울대병원으로 변경하고, 유족이 희망할 경우 유족 추천 의사 1~2명의 참관을 허용하는 등의 4가지 조건을 포함시켰다. 이 때부터 법원에 대한 불만으로 기조가 바뀐다. "부검 영장이 '조건부'로 발부되는 것은 법원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검찰이 처음 청구할 당시와 비교해 사정 변경이 생기지 않은 상황에서 집행기간이 26일이나 되는 영장을 발부한 것도 초유의 사례다." "유족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부검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모는 것 아니냐." 법원에 대한 비난 행렬에는 백씨 유족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 농민, 야당 의원, 심지어 의대생·의사들까지 가세했다. 재경지법 한 부장판사의 반응을 옮겨본다. "조건부 부검영장 발부는 사망원인을 놓고 벌어진 논란을 끝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겠지만, 그렇더라도 26일짜리 영장은 처음 본다."이어진 그의 멘트. "법원의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있었겠으나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 측면이 더 크다. "법원이라는 울타리에 있는 식구들이 보기에도 이번 부검 영장 처리는 이쪽 저쪽 모두의 눈치만 살피다가 던진 '묘수'가 실상 '악수'였다는 의미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법원의 입장에서 힘들고, 어렵고, 곤혹스런 사안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만...기분 나빠도 이해하길. 법도 모르는 기자의 한마디. '백 투 베이직'.헷갈릴 땐 다시 한번 '법의 원칙, 법의 철학'을 부여잡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