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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기획특집] 안동의 전통사찰을 찾아서(1)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3.05 20:34 수정 2019.03.05 20:34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천년 고찰 - 천등산 봉정사(鳳停寺)

대웅전
대웅전

 

속세와 영겁의 어디쯤 위치, 번민은 저만치 두고
국내 현존 最古 건축물 ‘극락전’, 국보도 2점 보유
신라 문무왕 시절, 의상대사 제자 능인대덕 창건 추정
國內 13번째 세계문화유산 등재, 유명인 방문 줄이어
欲을 이겨낸 精進, 봉황마저 머무른 자리에 지어져

선비의 도시 안동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유교 문화와 더불어 찬란했던 고대 불교문화의 숨결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에 위치한 봉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극락전을 비롯해 국보 2점, 보물 5점, 도지정문화재 5점을 보유하고 있다.
1천 년 넘게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킨 종합 승원을 묶은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중 한 곳으로 2018년 6월 30일 바레인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우리나라의 13번째 세계유산이다.
1999년에는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안동의 전통마을을 방문하면서 봉정사에 들러 한국 불교문화의 일단을 살펴보고 가 세계인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휴가 중 첫 방문지로 안동 봉정사를 찾아 더욱 알려졌다.
천등산 봉정사는 안동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도 험하지도 않아 잠시 바쁜 도심을 떠나 한적한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좋다. 또한 점차 번잡해 가는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조용한 한국 산중 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더없이 좋은 수련의 장소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문화를 존중하며 오늘날까지 상생하는 곳, 천등산 봉정사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천등산 봉정사의 역사
봉정사(대한불교 조계종)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 중 하나이다. 최초 창건은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덕의 창건으로 보고 있다. 이후 6차례에 걸쳐 중수했으며 고려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가기도 했다.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극락전의 옥개부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1972년에 실시된 극락전의 완전한 해체 복원 시에 상량문에서 발견됐다. 한국에서 최고 오래된 목조 건물이 봉정사 극락전 (국보15호)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극락전의 건립 연대는 적어도 12세기 이전으로 추정된다.
지난 2000년 2월 대웅전 지붕보수공사 과정에서 사찰 창건 연대를 확인해주는 상량문과 대웅전 내 목조 불단에서 고려말에 제작했다는 묵서가 발견됐다. 대웅전 지붕의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 북서쪽 종보 보아지에서 발견된 ‘宣德十年乙卯八月初一日書’(중국연호인 선덕 10년 ‘1435년, 조선조 세종 17년’에 쓴 글) 라고 적힌 상량문은 경상도 관찰출척사가 직접 썼고 자사 ‘新羅代五百之余年至 乙卯年分法堂重倉’(신라대 창건 이후 500여 년에 이르러 법당을 중창하다)이라는 사찰 건축연대를 밝혀주는 내용과 당시 봉정사의 사찰 규모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어 대웅전이 500여 년 전에도 있었음이 확인됐다.
대웅전 내 불단 바닥 우측에서 ‘辛丑支正二十一年 鳳亭寺 啄子造成 上壇有覺澄 化主戒珠 朴宰巨’(지정 21년 ‘1361년,공민왕 10년’에 탁자를 제작,시주하다.시주자 박재거)라고 적힌 묵서명도 최초로 확인됐다. 새로 발견된 상량문에는 신축, 단청을 한 시기,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토지, 사찰규모 등을 알려주는 내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조선 초 봉정사는 팔만대장경을 보유하고 500여 결(1만여 평)의 논밭에다 안거스님 100여 명에 75칸의 대찰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봉정사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창건에 관한 사실도 전설에 상당한 부분을 의존하고 있고 그 이후의 역사적 사실도 몇 차례 중수한 것을 제외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은 전무한 편이다.
창건 이후의 뚜렷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참선도량(參禪道場)으로 이름을 떨쳤을 때에는 부속 암자가 9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6·25 전쟁 때 인민군이 머무르면서 사찰에 있던 경전과 사지(寺誌)등을 모두 불태워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없다.
안동의 읍지인 영가지(永嘉志)에 따르면, “북서쪽 30리에 있는 천등산 아래에 있다. 신라시대에 이름난 절이 됐다. 가정 병인년(1566년) 봄에 퇴계 선생께서 절의 동쪽 낙수대 건물에 붙인 시가 있다(在府西三十里天燈山下羅代爲名刹前有落水)”고 기록돼 있어 조선시대에서도 계속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 창건 설화
천등산은 예전에 대망산이라 불렀다. 소년이었던 능인대사는 불문에 들어와 절 뒷산 바위 밑에 있는 ‘천등굴’에서 하루에 한 끼 생식을 하며 계절의 흐름도 잊고 십년을 줄곧 도를 닦았다.
어느 날 밤, 고운 피부에 반듯한 이마, 까만 눈동자, 날렵한 콧날, 앵두 같은 입술을 가진 아름다운 한 여인이 능인대사 앞에 나타났다. 여인은 대사에게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말을 걸며 손을 잡는 등 계속해서 능인을 유혹했다.
그러나 능인은 준엄하게 여인을 꾸짖으며 끝내 거절했다. 여인이 돌아서자 구름이 몰려드는가 싶더니 여인이 하늘로 올라섰다. 옥황상제의 명으로 능인을 시험하려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여인이 하늘로 사라지자 하늘의 등불이 내려와 굴 주변을 환히 비췄다. 옥황상제가 내린 선물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등의 덕택으로 수도했다 하여 굴은 ‘천등굴’, 대망산을 ‘천등산’이라 불렀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한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렀다. 이 종이 봉이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했다.

◇ 현존 우리나라 최고(最古) 목조건축물 등 세계유산 등재
이번 봉정사의 세계유산 등재는 지난해 5월에 있었던 이코모스(ICOM0S) 심사평가에서 봉정사는 ‘종합승원’으로 보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사찰에 비해 역사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제외돼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안동시를 비롯한 해당 지자체와 문화재청 등은 제외된 3개 사찰(안동 봉정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을 포함해 7개 산사 모두를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철저한 사전 준비와 각오로 세계유산 등재에 한 목소리를 냈다.
특히 현존 우리나라 최고(最古) 목조건축물인 극락전 등을 보유한 봉정사가 역사성에 결코 뒤떨어지지는 않다는 점 등의 등재 논리를 보강하면서 세계유산 등재라는 결실을 맺었다.
유네스코는 ‘한국의 산사’를 7~9세기 창건 이후 신앙과 수도, 생활의 기능까지 모두 갖춘 종합적인 승원으로 높이 평가했다. 현재까지의 지속성, 한국불교의 역사성이 세계유산 등재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기준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봉정사에는 국보 제15호인 극락전을 비롯해 국보 제311호인 대웅전, 보물 제1614호 후불벽화, 보물 제1620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보물 제 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 중암이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이코모스(ICOMOS) 전문가 현지실사 단계에서 사용 중인 임시가교를 전통사찰에 걸맞게 설치하라는 권고안에 따라 무지개다리인 ‘능인교’를 놓았다. 자연석 석축과 낙차보 등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본당과 템플스테이 구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천등산 봉정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도 험하지도 않아 잠시 바쁜 도심을 떠나 한적한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좋은 곳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가진 이 곳은 우리들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곳이기도 하고 누구나 봉정사에 오면 심신의 피로를 다 잊어버리고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등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점차 번잡해 가는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조용한 한국산중 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불교를 믿든 믿지 않든 더없이 좋은 수련의 장소이기도 하다.
또 능인교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이코모스 전문가 현지실사 단계에서 사용 중인 임시가교를 전통사찰에 걸맞게 설치하라는 권고안에 따라 놓인 홍예교(무지개다리)이다. 자연석 석축과 낙차보 등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이 다리는 본당과 템플스테이 구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게 된다.

◇ 도륜 스님(주지)과의 만남
2018년 9월 26일자로 부임한 도륜 스님(주지)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봉정사를 찾아와 할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작년 대비 사찰을 찾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러 가지 규제가 많아 건물의 신축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도륜 스님은 “봉정사에 올 기회가 된다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극락전을 보기를 권하고, 고려시대의 미가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불화, 단청의 모양을 보고나서 영산암에 들러 영산전의 봉암벽화, 전설, 종이학 벽화를 보고 같으면 좋겠다.”고 했다.
덧붙여 “봉정사 참배에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다. 자연환경을 잘 가꾸어서 도량을 아름답게 만들고 봉정사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 힐링할 수 있는 경북 대표 관광지로 만들겠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봉황이 머무른 자리, 영산암에서 하룻밤을 편하게 쉬고 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덕수 기자 duksoo1144@hanmail.net

무량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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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강당
화엄강당

 

일주문
일주문

 

극락전 및 삼층석탑
극락전 및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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