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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10년 전 귀향한 전인하 농부의 작약 꽃 사랑 이야기

이한우 기자 기자 입력 2019.04.23 16:45 수정 2019.04.23 16:45

“여보, 올해도 복원농원엔 작약 꽃이 흐드러 지네요”

2009년 작약과 인연, 2015년 첫 출하 ‘기쁨’
초창기, 3년 수확 싸이클·농부 현실과 ‘괴리’도
땅 어루만지는 農心은 후세 위한 또 다른 투자
“작약 향기에 10년 전 사별한 아내의 모습이…”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 온지 10년이 넘어간다.
그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 왔는지, 세월의 빠름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인생은 60부터 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퇴직 후 시작되는 제2의 삶은 현실에서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농촌이라, 도시보다 변화의 속도가 더디긴 했어도 달라지긴 마찬가지였다.
고령화·기계화로 대변 할 수 있는 고향에서, 예전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고향을 등지고 흩어진 친인척들과 마을 주민 수의 급속한 감소, 찾아보기 힘든 젊은이들….
모두가 예상 했던 일이었지만,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조건들이기도 했다.
늘어가는 빈집과 농사지을 사람을 찾지 못한 묵은 농토는, 시골의 절망을 보는 듯 했다.
바쁘게 살아온 젊은 시절보다 더 치밀한 계획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긴장감을 높였고, 그 대신 얻을 수 있는 것이, 농촌의 정년이 없는 생활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인생 2막을 열어보기로 작정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고민했던 것이 바로 작목 선택이었다.
우선은 기존 방식의 농사는 육체적으로 무리라는 인식을 하고, 고민을 풀어 보기로 하였다.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뭐가 문제겠는가!
아무리 생각을 깊게 하고 밤낮으로 고민을 거듭해도, 마땅히 고향에서 안정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재배 농작물의 선택은 쉽사리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인근 의성군에서 작약 꽃밭을 보고는, 운명처럼 작약을 재배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2009년 5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
그날 본 작약 꽃이, 어릴 적 추억을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리게 했다.
온 마을을 둘러싼 작약 밭은 어린 눈에도 참 예쁘다고 느끼기에 충분 했었고, 어른들은 작약 농사로 자식들을 공부시킨 곳이 바로 우리 고향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는 농사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작약 종근을 구하고, 잊고 지내던 손맛을 찾기라도 하듯이 작약 재배 기술을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배워 나갔다.
2015년도 부터 본격적으로 3년차 작약 뿌리를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작약을 식재한 후 3년 만에 처음 수확을 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행히 처음 시도한 작약 농사에 쏟은 정성이 통했는지, 작약 판매에 따른 소득이 타 작물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그런 결과를 기반으로 하여 작약 작목반 및 대규모 농장 조성은 수월하게 진행될 줄 알았지만 ,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며 작물 선택에 이어 또 한번 혼란과 고민을 안게 되었다.
해마다 가을철 농작물 판매로 살아가는 농촌 현실에서 3년에 한번 씩 수확하는 작약은, 그들의 생리에 맞지 않음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확실히 검증된 경험담조차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 주변 분들과의 생각 차이를 메꿔 가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시간이 흘러도 큰 변화 없는 작약에 대한 도전은, 그렇게 흐지부지 혼자만의 꿈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봉화약용작물연구소 서영진 박사와의 교류는 큰 버팀목 역할을 하면서, 점차 작약 재배에 관한 체계적인 학습과, 최고 경지의 기술 습득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일은, 해가 거듭될수록 주변에서 차츰, 저의 작약 재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17년도 부터는 전국에서 작약 종근 구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작약 밭 방문객들과 전화 문의가 꾸준히 이어졌다.
2018년에 예천군 귀농인회 임원들과 의기투합하여 개최하였던 ‘제1회 예천작약축제’를 통하여 작약 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사랑받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고, 그동안 마음속으로 다짐해 온 꿈을 확실하게 일생의 계획으로 바꾼 특별한 계기가 되었다.
내가 키운 작약 꽃을 구경하는 관람객들의 탄성은, 내가 선택한 길이 ‘옳았구나’ 라는 만족감으로 다가오며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어느덧 70고개를 바라보는 인생이라 일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넉넉하게 남아 있지 않지만, 품종개량을 위해서 하우스 안에 식재해 놓은 수십 종의 다양한 목단과 작약을 바라보는 마음은, 스스로에게 주는 내 인생의 훈장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약 농사를 시작하면서 맺게 된 인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살려서, 전국 최대 규모의 작약 집단 재배지를 완성하여 자랑스러운 경관 농업인으로 우뚝 서고 싶은 욕심이, 허언이 아니길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후세에 명품 모란과 작약 종자를 보급하는 마지막 희망의 날개 짓을 멈추지 않으리라!
자식들과 손주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아버지 할아버지로 남고 싶은 소망과, 10년 전 사별한 아내가 지켜보는 이 땅에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게 남은 열정을 쏟을 작약 밭이, 촌로에게는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이자 가치이다.
주변을 작약으로 환하게 웃음 짓게 하고 싶은 손짓으로, 오늘 아침도 장화를 신고 호미를 들고 집을 나선다.
십년 만에 만든 명함에 박힌 ‘복원농원’의 상표가 나를 채찍질 한다.         
이한우 기자  okm2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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