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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漢字로 보는 世上] 간담상조(肝膽相照)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01.12 19:20 수정 2020.01.12 19:20

배 해 주
수필가

간 肝. 쓸개 膽. 서로 相. 비칠 照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는 뜻으로 상호 간에 진심을 터놓고 격의 없이 사귐. 서로 마음이 잘 맞는 절친한 사이로 쓰인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당대(唐代)의 두 명문(名文)대가에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고문부흥(古文復興) 운동을 제창한 문우로서 세인으로부터 한유(韓愈)라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당나라 11대 황제인 현종 때 유주자사(柳州刺史)로 좌천되었던 유종원이 죽자 한유는 그 묘지명(墓誌銘)을 썼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는 제쳐 놓고 오히려 연로한 어머니를 두고 변경인 파주자사(播州刺史)로 좌천되었다. 부임하는 친구 유몽득을 크게 동정했던 유종원의 진정한 우정을 찬양하고, 이어 경박한 사귐을 증오하며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면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 뜻하지만 일단 털끝만큼이라도 이해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한 생을 살아가면서 관포지교의 정을 나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얼굴 아는 사람은 많아도 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휴대폰 속에 수많은 지인의 전화번호가 있다. 그러나 진정 자신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연락을 하면 내일 같이 쫓아와 아픔을 같이해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친구를 어쩌면 껍데기만 보고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인 간의 일이 이럴 진 데 때로는 형제간도, 친척도, 사회도, 아니 국가 간에도 그렇다. 서로 속내를 터놓고 마주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고 힘들다. 그래서 사회가 통합하기 힘들고 정당 간에도 자신의 본심은 감춘 체 서로를 믿지 못하고 상대방의 속내를 들여다 보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접하게 된다. 시절이 어렵고 힘들 때 누군가가 먼저 자신을 낮추며 때로는 자존감을 버려야 한다.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할 때 상대도 간과 쓸개를 보여주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사회가 통합되고 진일보하려면 앞선 자들의 솔선수범이 있어야 한다. 아래 사람보다 윗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가진 자가, 배움이 적은 사람보다는 지식인이, 청소년보다는 나이 든 사람이 먼저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화합이란 허구의 말 잔치가 될 뿐이다. 특히 정당의 지도자, 나라를 이끌어 가는 위정자, 많은 사람의 추앙을 받는 지성인의 솔선수범(率先垂範)이 필요한 때다. 바로 지금이 사회를 걱정하고 나랏일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자신부터 하심(下心)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얻어야 할 때다. 무엇인가 잘 풀리지 않을 때 간담상조(肝膽相照)의 깊은 의미가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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