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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삼성의 회장감시위원회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01.20 19:36 수정 2020.01.20 19:36

김 화 진 교수
서울대 법학대학원

삼성그룹이 9일 그룹 차원의 독립적인 준법감시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첫째, 계열사들이 이미 상당히 세련된 준법감시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 둘째, 이번 출범의 변을 보면 단순한 준법감시 업무와는 거리가 있는 경영권 승계 문제에까지 관여하겠다고 하므로 사실상 회장감시위원회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지금 진행 중인 국정농단 관련 재판용이라는 우려를 내놓는다. 실제로 재판부가 주문한 데 대한 답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항상 뭔가 특별한 계기를 통해, 외부 충격에 의해 자신을 돌아보고 정비한다.
특히 준법감시는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영리기업들에게 돈 버는 일보다 급한 일은 아니다. 항상 뒷전이기 마련인데 특별한 계기로 다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선처를 위한 명분용이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염려에는 우리의 통상적인 사회 경험에서 나오는 예단적 편견이 반영되어 있다. 어떤 재판부도 구체적 사건에서의 사법 정의 실현을 양보하면서 사회개혁적 아젠다를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는 그 자체의 의미로 해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몇 가지 염려되는 사항들이 있다. 많은 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번에 발족하는 준법감시위원회는 단체법인 상법의 기반 위에 있지 않고 계약적인 기초에 의한다. 자발적인 참여와 지원에 의존하는 일종의 자치기구다. 주식회사 내부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이자 감독기관인 이사회가 기업집단의 법률적 특성 때문에 총수 견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도입된 것이다. 각 계열사 주주들이야 반대할 이유가 없겠지만 이사회에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고 준법감시위원회의 감시를 받는다 해도 법률적 책임은 각 이사회가 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내부에 준법감시 조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외부에 있는 기구에 전적으로 협력할 회사 구성원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지도 문제다. 실제로 사장에서 시작해서 신입 사원까지 자신의 회사 내 미래와 별 무관한 곳과 얼마나 공조하려고 할까. 당장 지원 인력으로 파견 나가고 싶어하는 사원들이 얼마나 있을지 따져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 나온 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에게는 매우 민감한 노조문제까지 다룬다고 한다.
‘회사 인간’의 가장 큰 속성은 실적을 쌓고 싶어 하는 것이다. 영업과 연구개발이다. 일반 관리 업무는 별로다. 재무가 인기 있어진 것도 오래지 않다. 군인들이 실전경험을 쌓고 싶어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준법감시부서의 가장 큰 취약점은 ‘돈도 벌지 못하면서’ 후방에서 간섭만 하고 안 좋은 소리만 한다는 인식이다. 큰 사고가 나서 일 년 동안 힘들게 번 돈을 모두 벌금, 과징금이나 손해배상에 쓰게 되는 일을 방지하는 역할은 최고경영진 눈높이에서만 가치가 있다.
사정이 그럴진대 회사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것으로 공인된 인사들도 참여해서 운영되는 조직은 회장이 아무리 지원한다 해도 회사 내부에서는 그 진정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몸을 사릴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이사회 결의를 하고 협약을 체결해도 본질적으로 회장을 견제하기 위한 조직이다. 법률적으로는 각 계열사 사장과 이사회에 대한 감시위원회지만 사장은 회장이 감시하고 이사회는 법률에 위반되거나 비윤리적인 결의나 활동을 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크게 감시할 일이 없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회장실에서 기침만 해도 회사 전체가 감기몸살을 앓는다. 전근대적으로 보이지만 우리 기업들이 집중력을 발휘하고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단점은 모든 일이 ‘회장님 선’의 일이 되는 순간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는 것이다. 삼성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답지 않게’ 허술하고 황당한 일들이 일어난 배경에는 대부분 회장님 선에 대한 조직행동적인 고려가 있다. 많은 회장이 이를 답답해 하지만 충성스러운 부하 직원에게는 치하를 할 수는 없어도 불이익은 주지 않는다.
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사실상 회장감시위원회지만 역설적인 것은 이번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면서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어느 회장도 정치권의 압력에 할 말이 생겼다.
LG의 고 구본무 회장은 국회청문회에서 “국회가 법률로 정경유착을 막아달라”고까지 했다. 회장을 감시할 일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역할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움직임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재벌 회장도 공식적으로 감시 대상이라는 상법의 일반적인 원칙을 베스트 프랙티스로 전환하는 의미가 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성공을 바란다.
다만 기업지배구조 허브로서 각 사의 이사회가 갖는 중요성과 기능, 책임감이 희석되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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