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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돌아온 아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01.21 20:01 수정 2020.01.21 20:01

김 시 종 시인
국제PEN 한국본부 자문위원

성서는 모든 문학(문예)의 고향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성서 중에도 신약성경중의 누가복음은 신약 성서중에도 으뜸가는 문학성이 막강하다. 누가는 의사며, 로마의 뛰어난 문학영웅(문호)이다.
누가복음에는 ‘착한 사마리아인’이야기와 탕자의 귀향(돌아온 아들)이 백미(白眉) 중 백미다. 아버지가 집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멀리 이사를 가서 몹시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지는 것은 크게 보면 고통이 아니고 아름다운 행복일 수 있다. 부자인 아버지의 재산을 1/3을 분재(分財)받아 아버지를 떠나 아버지의 영향력이 미칠 수 없는 향락의 도시로 떠나버린 철없는 아들이 보고 싶어, 날마다 해질 무렵이면 동구(洞口) 밖의 살아있는 인간 장승 아버지! 아버지는 날마다 아들 기다리느라 마음이 탔겠지만, 그마저 뒤집어 생각하면 행복의 극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특정한 사람을 기다리거나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이가 없어, 나는 그마저도 행복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지난해부터 길고양이 한 가족 세 마리가 우리집에 둥지를 틀어 우리집 세 식구가 약속한 듯이 관심을 가지고 돌봐주고 있다. 우리집에 깃든 고양이 세 마리 중 고양이 가족의 가장(家長)격인 ‘공중부양이’가 이틀, 사흘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아 할 일이 많지 않은 나의 마음을 뺏고 있다. 요새 같으면 어디가서 끼니나 제때 챙기는지 영양실조나 걸리지 않았는지, 공중부양이(고양이)가 마음에 켕긴다.
인상이 좋게 생긴 공중부양이는 며칠 안 보면 공연히가 아니라 당연히 보고 싶다. 잊지 않고 기다릴만 하면 모습을 보이는 공중부양이가 신통하다. 며칠 만에 돌아와도 주접이 들지 않고 깔끔하기가 강남신사 같다. 뽀얀 털에 윤기뿐만 아니라 생기마저 돈다. 며칠 만에 돌아오면 내 바지가랑이에 머리를 부벼대며 스킨십을 잊지 않는 애교도 보인다.
나를 기다리게 하는 공중부양이가 야속하거나 조금도 밉지 않다. 고운 놈 미운데 없고, 미운놈 고운데 없다는 말대로 공중부양이는 고운털이 백인 애묘(愛猫)다.
길고양이를 가축처럼 돌봐주고, 가족처럼 아껴주는 따뜻한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캣맘·캣팝이 인정받는 동물도 이웃으로 돌봐주면 동물애뿐 아니라 인간애(人間愛)도 무럭무럭 자라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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