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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드론, 여객기 그리고 미사일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01.22 19:21 수정 2020.01.22 19:21

김 수 종
뉴스1 고문

2020년 새해 벽두 두 대의 비행기가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나는 미군이 이란의 군부 실세 카셈 솔레이마니를 암살하는 데 사용한 드론 ‘MQ-9 리퍼’이고, 다른 하나는 이 암살 사건 여파로 이란 미사일에 맞아 176명의 탑승자와 함께 풍비박산이 난 보잉737 여객기다. 드론, 여객기, 미사일이 더욱 많아질 세계의 하늘은 더욱 위험해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맺은 핵합의를 폐기한 것은 2018년이었다. 그해 미국·이란 관계가 험악해졌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미국을 위협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한 이란의 응수는 대통령 궁에서 나온 게 아니라 이란 군 소장의 입에서 나왔다. “우리 대통령이 응답하는 것은 체면 깎이는 일이다. 내가 군인으로 대답해주마” 이렇게 미국 대통령의 격을 떨어뜨리며 약을 올린 인물은 카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다. 지난 1월 3일 솔레이마니가 미군의 드론 공격에 의해 암살되었을 때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에피소드다.
솔레이마니가 얼마나 위협적이었고 미웠으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에 대한 암살계획을 승인하고 드론 공격으로 암살을 집행하는 현장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받았을까.
미군이 솔레이마니를 암살한 곳은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이다. 솔레이마니가 시리아에서 민간항공기를 타고 바그다드 공항에 도착하고 이동하는 동선을 파악하고, 그가 자동차에 탑승해 공항을 빠져나가는 순간 MQ-9 리퍼 무인기가 공격하여 자동차를 포함한 일행을 폭사시켜 버린 것이다. 새벽 1시에 사람과 차량이 복잡하게 얽혀 있게 마련인 공항 구내에서 마치 핀셋이 목표물을 뽑아내듯이 솔레이마니가 탄 차량만 폭파시켰다. 이 완벽한 제거작전은 MQ-9의 탁월한 성능, 위성통신, 현지 정보탐지능력이 결합되어 나왔다.
한때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외과수술식 폭격(surgical strike)이 거론된 적이 있다. 영변핵시설만을 정밀하게 타격하여 파괴한다거나 북한에 납북되어 대동강에 전시 중인 미국의 납북함정 푸에블로호를 파괴함으로써 북한권력자를 겁주게 한다는 언급이었다.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은 외과수술식 폭격 가능성을 강력히 암시하는 일이었다.
드론 MQ-9 리퍼는 미사일 등으로 완전 무장하고 14시간에 걸쳐 6,000㎞를 날며 작전을 펼칠 수 있다. 미 공군이 이 드론을 195대를 보유하고 있다니 가공할 전력이다. 
드론은 미국만 갖고 있는 무기가 아니다. 중국과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가 군사용 드론의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도 드론으로 작년 사우디 유전을 폭격한 적이 있다. 어쨌든 솔레이마니 암살 작전을 계기로 세계 각국은 공격용 드론 개발과 배치에 속도를 낼 것이다. 한국도 북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드론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서 감탄했고, 드론의 산업적 활용가치를 상상하며 사람들은 긍정적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이제 군사용 드론의 발달을 상상하면 가공할 일이다.
솔레이마니 암살이 일으킨 비극은 민간 여객기 격추사건이다. 미국의 드론 공격에 이란은 즉각 보복을 선언했고, 지난 8일 이라크 내 미군기지 두 곳을 지대지 미사일로 공격했다. 미국의 드론 공격과 이란의 미사일 보복공격이 오가는 와중에 이란 테헤란 공항 상공에서 우크라이나항공 소속 보잉737 여객기가 미사일을 맞고 추락했다. 탑승자 176명 전원이 사망했다.
이란 군부는 추락 원인을 놓고 모른다고 발뺌을 하다가 서방 언론이 비행기가 미사일에 맞는 장면을 보도한 후 이란 혁명수비대가 적의 공격으로 오인하여 발사한 미사일이었다고 격추사실을 인정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 국제공항에서 관제사의 허가를 받고 이륙한 여객기가 3분 만에 이란군의 미사일로 떨어진 것이다. 미국·이란의 충돌 와중에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고 그냥 넘겨버리기엔 너무 충격적이고 어이없는 사건이다. 이란 군의 민항기 식별능력, 이란정부의 항공관제능력, 우크라이나항공의 위험예방능력 등이 복합적으로 빚어낸 비극이다.
50대 이상의 한국인들은 미·소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83년 9월 1일 발생한 ‘대한항공 007피격’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뉴욕 케네디공항을 출발하여 서울 김포공항에 착륙예정이던 보잉747 점보기가 캄차카반도 상공에서 항로 이탈로 소련영공을 침범했다. 소련 공군은 민간 여객기임을 확인했으나 전투기 조종사에게 격추시킬 것을 명령했다. 승무원 23명을 포함하여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1978년에도 파리에서 김포로 향하던 대한항공 소속 707여객기가 북극항로에서 항법장치 착오로 항로를 이탈하면서 소련영공으로 들어가자 소련 공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무르만스크 인근 호수에 강제 착륙시킨 사고가 있었다. 일본인을 포함한 승객 2명이 사망했다.   
비행기는 통계적으로 보면 자동차나 배에 비해 사고율이 매우 낮다. 그러나 비행기 안전 운항에 대한 탑승객의 관심은 자동차나 배를 이용하는 사람에 비해 몇 배 높을 것이다. 기류가 불안한 항로를 날 때 흔들리는 비행기에 탄 사람들은 비상상황을 머리에 떠올리기 마련이다.
30년 전만 해도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비행기 여행은 대중화되었다. 북한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가 항로로 연결되어 있다.    
미국·이란 갈등에서 빚어진 불행한 사건과 같은 일들이 한반도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여객기도, 전투기도, 미사일도, 그리고 드론도 더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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