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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漢字로 보는 世上] 한단지몽(邯鄲之夢)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01.27 18:16 수정 2020.01.27 18:16

배 해 주
수필가

땅 이름 邯. 땅 이름 鄲. 갈 之. 꿈 夢.
심기제(沈旣濟)에 실린 말인데,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할 때 쓰이는 형용어로 한단지침(邯鄲之枕), 한단몽침(邯鄲夢枕), 노생지몽(盧生之夢) 등으로 쓰인다.
당나라 현종(玄宗)때 이야기다.
도사 여옹이 한단(하북성)의 한 주막에서 쉬고 있는데 형색이 초라한 젊은이가 옆에 와서 산동(山東)에 사는 노생(盧生)이라며 신세 한탄을 하고는 졸기 시작했다.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양쪽에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내 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들었다. 노생이 꿈속에서 점점 커지는 베개 구멍 속으로 들어가 보니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있었다.
노생은 최(崔) 씨로 명문인 그 집 딸과 결혼을 하고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순조롭게 승진했다. 수도를 다스리는 벼슬을 거쳐 어사대부 겸 이부시랑에 올랐으나 재상이 투기하는 바람에 단주지사(端州刺史)란 자리로 좌천되었다. 3년 후 호부상서(戶部尙書)로 조정에 복귀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재상이 되었다. 그 후 10년간 노생은 황제를 잘 보필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한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러나 변방의 장군과 모반을 꾀했다는 죄로 어느 날, 갑자기 역적으로 몰렸다. 노생은 포박당하는 자리에서 탄식하며 말했다.
“내 고향 산동에서 땅뙈기나 부쳐 먹고 살았더라면 이런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애써 벼슬길에 나갔는지 모르겠다. 그 옛날 누더기를 걸치고 한단의 거리를 걷던 때가 그립구나. 하지만 이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칼로 자결하려 했지만, 아내와 아들이 말리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 노생과 함께 잡힌 사람들은 모두 처형당했으나 그는 환관(宦官)이 힘써 준 덕분에 사형을 면하고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수년 후 모반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황제는 노생을 소환하여 중서령을 제수한 뒤 연국공에 책봉하고 많은 은총을 내렸다. 그 후 노생은 모두 권문세가(權門勢家)와 혼인하고 고관이 된 다섯 아들과 열 손자를 거느리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다가 황제의 어의(御醫)가 지켜보는 가운데 80년의 생애를 마쳤다.
노생이 깨어 보니 꿈이었다. 옆에는 여전히 여옹이 앉아 있었고 주막집 주인이 짓고 있는 밥도 아직 다 되지 않았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여옹은 웃으며 말했다.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라네” 노생은 여옹에게 공손히 작별 인사를 고하고 한단을 떠났다는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인간만사 일장춘몽(一場春夢)이고 한단지몽(邯鄲之夢)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좋은 일이 있으면 그것이 영속되길 바라고, 반면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현실이 아니고 꿈이길 바란다. 그리고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꿈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아픈 현실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상이 아픔으로 가득하다. 나랏일이 잘 풀리지 않으니 개인사가 잘 풀리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다. 정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정국이고, 경제는 끝이 없이 추락하고 있다. 젊은이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치는 국민이 편안하게 잘 먹고 잘살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그런데 잘 먹고 잘사는 것이 힘겨우니 그 이외 것들은 보지 않아도 알만하다.
이럴 때일수록 여든 야든 개인이나 당리당략을 떠나 나라가 융성하는데 기초를 쌓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좀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는가?
많은 사람이 지금, 한단지몽(邯鄲之夢)이길 바라는 민초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정치인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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