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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100만명의 촛불 배심원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6.12.12 15:23 수정 2016.12.12 15:23

존 로크(John Locke)는 1683년 영국을 등졌다. 자신의 후원자 섀프츠베리 백작을 따라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영국에 남아 있다가는 대역죄(大逆罪)로 목이 달아날게 뻔했다. 결코 기우는 아니었다. 섀프츠베리는 휘그(Whig)당 창당 멤버로 절대왕정에 반대했다. 그는 입헌군주제를 지지했다. 절대군주제를 옹호하는 토리(Tory)당이나 찰스2세로서는 눈엣가시였다. 토리는 1681년 섀프츠베리를 대역죄로 체포했으나 기소에는 실패했다. 토리는 집요했다. 토리는 먼저 배심원단을 장악했다.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섀프츠베리와 로크는 서둘러 네덜란드행 배에 몸을 실었다.새프츠베리는 네덜란드에 도착하자마자 자리보전을 하더니 이내 세상을 떠났다. 로크는 1689년 명예혁명으로 귀국할 때까지 5년5개월간 망명 생활을 이어갔다. 인고의 시절인 동시에 영광을 준비하는 세월이었다. 로크는 망명 기간 중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구상했다. 바로 '통치론'이다. 그는 통치론을 통해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이념적 초석을 제공했다. 로크는 인간은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평등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특히 자유가 없으면 재산은 물론 생명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자유의 가치를 강조했다. 로크는 인간의 권리 가운데 재산권을 중시했다. 정부의 기능도 개인의 재산권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인간은 재산권을 안정적으로 향유하기 위해 계약을 통해 사회를 세운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재산권을 강조한 것은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영국은 13세기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를 통해 왕권을 견제하기 시작했지만 군주들의 막가파식 재산 강탈은 끊이지 않았다. 헨리8세는 수도원 해산 조치를 통해 모든 교회 토지를 몰수하며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고, 찰스1세는 백성들을 상대로 '강제 대금' 제도까지 도입했다. 백성은 의무적으로 왕에게 돈을 빌려줘야 하지만 왕은 일방적으로 만기를 연장하는 것은 물론 아예 상환을 거부하기도 했다. 마침내 의회파가 찰스1세를 몰아내기 위해 청교도혁명을 일으켰다.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는 백성을 억압하고 살생한 대역죄를 이유로 찰스1세를 처형했다. 영국은 크롬웰 주도 아래 사상 최초로 공화정을 도입했다. 크롬웰이 죽은 후 찰스2세가 왕정복고를 통해 즉위했다. 그 또한 아버지 찰스1세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더욱이 종교적 갈등을 방치하는 바람에 귀족과 백성들의 거센 반발을 자초했다. 로크가 사회계약론을 제시한 것도 국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서 계약을 통해 사회를 구성한다. 정부(통치자)는 계약의 주체가 아니다. 그저 국민들이 계약을 통해 위임한 권력을 행사할 뿐이다. 정부가 국민의 이익을 외면하면 국민은 정부로부터 권력을 회수할 수 있다. 국민 저항권이 언제라도 보장된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으로서 얼마든지 새로운 정부를 세울 수 있다. 로크의 국민주권 이론은 근현대 국가 운영원리로 자리잡았다. 토머스 제퍼슨은 죽을 때까지 표절 논란으로 마음고생을 했다. 자신이 기초한 미국 독립 선언문이 로크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집권 기간 내내 대역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대통령부터 헌법을 외면했고, 대통령의 측근들은 권력을 등에 업고 온갖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대통령은 자신에게 위탁된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했다. 구태여 헌법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임차인에게 5년만 살라고 집을 맡겼더니 주인 몰래 집을 팔아먹은 꼴이다. 권한 위임을 백지화하고도 남을 심각한 '계약 위반'이다. 대통령을 빙자한 사유재산 강탈 시도도 벌어졌다. 시장경제는 엄격한 사유재산 보호를 전제로 가동된다. 언제 어디에서 자신의 재산을 빼앗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거래는 기대할 수 없다. 깡패가 자원을 배분하는 약탈경제로 전락하고 만다. 마침내 국민 배심원들이 대역죄 심판을 위해 길거리로 나섰다. 100만 명의 배심원들은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헌정 문란 등 갖은 범법 행위에 대해 유죄를 선언했다. 이제는 형의 집행만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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