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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漢字로 보는 世上] 노마지지(老馬之智)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02.09 17:49 수정 2020.02.09 17:49

배 해 주
수필가

 늙을 老. 말 馬. 갈 之. 지혜 智.
한비자에 실린 말로서 늙은 말의 지혜란 뜻이다.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기나 장점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춘추 시대 오패(五?)의 한 사람이었던 제(劑)나라 환공(桓公)때 일이다. 어느 해 봄날 환공은 명제상 관중(管仲)과 대부 습붕을 데리고 고죽국(孤竹國 지금의 허베이성)을 정벌하러 나섰다.
그런데 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추운 겨울까지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전군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 “이런 때 늙은 말의 지혜(노마지지)가 필요하다”면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놓도록 했다. 그리고는 모든 군사가 그 늙은 말의 뒤를 따랐다. 그러자 얼마 안 되어 큰길이 나타나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또 한번은 산길을 행군하다가 식수가 떨어져 군사들이 갈증에 시달렸다. 그때 습붕이 말했다. “개미는 원래 여름에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에는 산 남쪽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아래 일곱 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고 하며 군사들에게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도록 했다. 그렇게 개미집을 찾아 땅을 파자 샘물이 솟아났다.
한비자는 그의 저서에서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하지만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배움의 대상에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동물과 식물, 자연의 이치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다. 그런데 현실로 돌아오면 늙은 사람은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오직 늙었다는 것뿐이다.
여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지난 시간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그래서 신념이나 의지를 맹신하듯이 좀처럼 굽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흔히 회자되는 말이 ‘꼰대’ 스타일이다.
배움의 대상이 제한되어 있지 않듯이 젊은이에게도 분명 배울 것이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도덕도 윤리도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면 더 할 얘기가 없다.
옛날 농경과 산업시대의 아버지는 모든 것에서 스승이었다. 그때는 경험한 사실이 없으면 어떤 상황에도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른에게 물어야 할 일이 별로 없다. 손안의 스마트 폰 하나에 세상의 모든 지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를 사용할 줄 모르면 바보가 되고 잘 이용하면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처럼 모든 것에 스승인 어른을 존경했던 존경심이 사라지는 이유일 수 있다. 스마트폰의 사용을 보면 그렇다. 나이 든 사람일수록 어린이보다도 못하다. 늙은이는 기껏해야 통화와 문자 수신, 카메라 기능의 활용이 고작이다. 젊은 사람일수록 활용치 높이 올라간다. 신문물에 대해서 나이 든 사람이 그만큼 적용이 더디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늙은이도 배움에는 대상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늙었다고 무조건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늙음이란 단어 속에는 스마트 폰 속에도 없는 경험을 통해 지득한 수많은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지혜를 휴지처럼 버리지 말아야 한다. 가정이나 사회 국가도 어려움이 클수록 지식이 아닌 늙은 말의 지혜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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