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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와각지쟁(蝸角之爭)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02.23 18:09 수정 2020.02.23 18:09

배 해 주
수필가

달팽이 蝸.  뿔 角.  갈 之.  다툴 爭
달팽이 뿔 위에서의 싸움이란 뜻이다. 하찮은 일로 승강이를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서 장자의 측양편에 실려있으며 와우각상(蝸牛角上), 와우지쟁(蝸牛之爭)이란 말로도 쓰인다.
전국시대 양(梁)나라 혜왕(惠王)은 중신들과 맹약을 깬 제(齊)나라 위왕(威王)에 대한 응징책을 논의했으나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서 혜왕은 재상 혜자(惠子)가 데려온 대진인(戴晉人)에게 의견을 물었다. 대진인은 현인(賢人)으로 도교를 믿고 닦는 사람답게 이렇게 물었다.
“전하, 달팽이라는 미물이 있사온데 그것을 아십니까?”라고 하자 “물론, 알고 있소”, “그 달팽이의 왼쪽 촉각 위에는 촉씨(觸氏)라는 자가, 오른쪽 위에는 만씨(蠻氏)라는 자가 각기 나라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서로 영토를 다투어 전쟁을 시작했는데 죽은 자가 수만 명에 이르고 도망가는 적을 추격한 지 보름 만에 전쟁을 멈추었습니다”, “그런 엉터리 이야기가 어디 있소?”, “하면, 이 이야기를 사실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전하, 이 우주 천지에 제한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끝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소”, “하면, 마음을 그 무궁한 세계에 노닐게 하는 사람이 왕래하는 지상의 나라 따위는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하찮은 것이라고 할 수 있사옵니다”, “으음, 과연”, “그 나라들 가운데 위라는 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대량이라는 도읍이 있고, 그 도읍의 궁궐 안에 전하가 계시옵니다. 이렇듯 광활한 우주에 비하면, 지금 제나라와 전쟁을 시작하시려는 전하와 달팽이 촉각 위의 촉씨·만씨가 싸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과연,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소”
대진인이 물러가자 제나라와 싸울 마음이 없어진 혜왕은 혜자에게 힘없이 말했다.
“그 사람은 성인(聖人)도 미치지 못할 대단한 인물이오”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는 그 크기가 얼마인지 형용할 수 없다. 그 속에서 태양계는 아주 작은 별들의 집합체에 불가하다. 태양계 안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하나의 별이다. 이런 지구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찾아야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작은 땅에서 남북이 나누어져 있다. 그 안에서 남쪽에만 영호남이 갈라져 있고, 지역별로 다툼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달팽이 뿔 위와 같은 작은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다. 그 싸움은 지역도 없고 남녀노소도 없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 존재하고 있다.
인구 2만도 안되는 작은 군 단위에도 예외가 없다. 몇 사람만 모여도 편이 갈라지고 의견이 충돌한다. 공산주의가 아닌 이상 사람이 사는 곳에 어떤 사안에 대해 완벽한 일치란 있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골이 너무 깊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고 타인을 배려하는데 한치의 예외가 없다. 이런 불합리한 것들을 시간이 길어도 그리고 힘들어도 언젠가는 고치고 바꿔야 한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길은 꾸준한 교육을 통해서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 교육마저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좌충우돌하고 있으니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실타래처럼 꼬인 세상을 풀어 갈 수 있을지?
정권을 잡은 위정자는 보수 쪽이나 진보 쪽이나 국민 통합을 입에 달 듯 외치고 있지만, 그 실천은 미미하다. 아니 안중에 없다, 달팽이 뿔 위에서 싸움을 그만하고, 대의를 생각해서 자신을 내려놓은 방하착(放下著)의 정신이 아쉽기만 하다.
올해에는 부디 틀림만을 고집하지 말고 다름을 인정하는 너그러운 한해이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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