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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행복(幸福) 만들기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02.24 19:50 수정 2020.02.24 19:50

김 시 종 시인
국제PEN 한국본부 자문위원

내가 일간신문에 칼럼을 처음 쓴 것은, 1970년 초에 ‘매일신문’의 매일시언 (每日時言)란에 ‘긍정적 후퇴’란 제목으로 시구(始球)를 던졌다.
평판(評判)은 첫 볼이 홈런을 쳐서 그 뒤로 일간신문에 평필(評筆)이 이어졌다.
2007년부터 2020년에 이르기까지 경북매일신문(105회), 대구신문(229회), 세명일보(222회 이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칼럼을 꾸준하게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고료를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원고료 목적 0%) 내가 하고 싶은 내 가슴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어 독자들에게 행복한 삶을 나눠드리기 위해서다.
이 지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삶의 목적은 거의 같은 게 아닐까?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나는 행복을 이웃에게 나눠 주기 위해 시와 에세이(칼럼)를 쓴다.
나는 전업 시인이지만, 시를 쓸려고 무리하게 용을 쓰지 않는다.
나는 그 대신 매일 시 정신을 가지고 올곧게 살려고 유념한다. 시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시를 쓸려고 애쓸 필요가 전혀 없다.
필자가 일간신문(세명일보)에 시를 소재로 자주 쓰는 에세이를 주목해 주시기 바란다.
필자가 안내해 드리는 좋은 시에 주목하여 읽으시면, 좋은 시를 힘 안 들이고 읽으시고 행복감을 느끼시면 된다.
필자가 생각하기는 좋은 시를 지으려고 애쓰는 시인보다 시인이 지어놓은 좋은 시를 골라 읽는 시의 애독자들이 더 행복하다는 확신이 든다.
필자가 집필한 칼럼을 매번 즐겨 읽으시는 애독자들을 위해 200여편의 한국명시를 엄선하여 집필한 시인 홍윤기 교수님의 ‘한국의 명시감상’을 이 기회에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의 명시감상’(홍윤기 교수)에 실린 필자(김시종)의 ‘불가사리’를 선보여 드리니 읽으시고 홍윤기 교수님과 공감대를 함께 하시면 더욱 금상첨화가 될 것 같다.

불가사리 / 김시종

송도말년松都末年
불가사리란 놈이 있었다.

쇠란 쇠는 모두 먹고
과부 침모針母 바늘조차 삼키고

그 불가사리가 요즘에 다시 나타났다.

동빙고에 나타나고
인왕仁旺에도 보이고
시골에도 출몰한다.

분명 쇠를 먹긴 먹었는데
X-ray에도
문제의 쇠는 잡히지 않는다.

불가사리는 스님의 목탁도
의금부의 아령도
끄덕 없이 먹어 치우고

막판엔 이태백의 원고지를
찢어 삼키려 든다.

주 제 : 부정부패와 우수(憂愁)
형 식 : 7연의 자유시
경 향 : 풍자적, 해학적, 상징적
표현상의 특징 : 간결한 시어로 사회악에 대한 조명이 선명하다. 현실 고발의 시정신이 잘 전달되고 있다. 반어적(反語的)인 표현 수법이 공감도를 드높여 준다.
이해와 감상 : 고려(918~1392)가 망할 무렵의 극심한 부정부패의 풍자의 대상이었던 괴물이‘불가사리(不可殺伊)’였다는 것은 유명한 전설이다. 상상의 짐승인 불가사리는 곰처럼 생겼으나 코끼리의 코와 무소의 눈, 쇠꼬리, 범의 다리를 가졌는데 쇠를 먹고 살았단다. 이 녀석이 고려땅에 나타나 쇠라는 쇠는 심지어 바늘까지 몽땅 먹어 치웠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나라가 온전할 리 있었을까.
‘쇠란 쇠는/ 모두 먹고/ 과부 침모/ 바늘조차/ 삼키고’(제2연) 했다던 ‘그 불가사리가/ 요즘에/ 다시 나타났다’(제3연)는데, 어디에 나타났는가.
‘동빙고에 나타나고/ 인왕에도 보이고/ 시골에도 출몰한다’ (제4연). 동빙고(東氷庫)란 서울의 동빙고동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작품이 발표(現代文學 1972.2)될 당시, 그 지역에 부정부패한 사람들이 산다고 언론에서 지적이 되기도 했다.
인왕은 청와대의 맞은편 산이다. ‘막판엔/ 이태백의 원고지를/ 찢어 삼키려 든다’니 당(唐)나라 시성(詩聖)의 ‘원고지’가 오늘에 남았다면야 중국의 국보요 그 값어치 또한 황금에 비길 것인가. 21세기가 밝은 오늘은 불가사리가 또 어디서 서식하고 있을 것인가.
‘불가시리’는 발표 당시 인구에 회자(膾炙)되었음을 아울러 밝혀두련다. (시인 홍윤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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