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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어려움 속에서도 꽃 핀 대한민국 임시정부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6.04.07 10:27 수정 2026.04.07 10:27

경북북부보훈지청 보훈과 배수훈 주무관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라고 적어놓아 정부의 시작을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두고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3ㆍ1운동 이후, 각지에서는 민주공화정부를 세우자는 움직임이 일어나 임시정부 수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흩어져 있는 정부를 모아 마침내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공포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나라에서 민주공화정을 택한 최초의 정부이며, 입법기관인 임시의정원, 사법기관인 법원, 행정기관인 국무원의 삼권분립을 통해 정부의 구조 또한 명확히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공화정부의 도입은 흥미롭다. 당시는 왕이 있던 시기였다. 국민이 모두 주인인 주권재민 사상이 피어나기 어려웠고, 그러한 시대상에 비추어 봤을 때 획기적이고 개혁적인 변화는 더욱이 많은 부작용을 낳았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공화정이라는 시스템이 있어 지금 우리가 사는 때에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당연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수립 이후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동아시아의 정국 변화 등에 따라 임시정부의 위치가 상해, 충칭 등으로 이동했고, 임시정부 체제가 내각책임제, 주석제 등으로 바뀌었다. 또한 1925년 국민대표회의 이후 큰 분열이 발생했고, 1940년대에는 대일 선전포고를 할 정도로 성장하는 등 조직의 암흑기와 전성기를 크게 겪었다.

큰 변화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선배들은 정부의 명맥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 노력을 토대로 광복 이후의 우리나라는 발전하여 ‘한강의 기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만큼 성장하였다.

특별히 분열에도 그 자리를 지킨 분들처럼, 나 또한 국민과 함께하며 굳건히 공무 수행에 힘쓰고, 변화에 대응하며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공무원이 되겠다. 이번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했던 순국선열·애국지사께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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