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시(MERCY)’는 우리말로 ‘자비’를 뜻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스템은 인간의 감정이나 눈물, 사정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가장 냉혹한 기계적 논리로 움직인다. 즉, 기계가 베푸는 유일한 자비는 인간이 더 이상 서로를 용서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기계의 계산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 오직 수치화된 데이터만이 이 모든 걸 증명한다. 이 영화에서는 ‘노 머시(No Mercy)’라는 원제의 의미를 뒤집어서 ‘자비는 없다’라는 점을 직접적으로 강조한다.
영화는 초반에는 ‘머시 덕분에 범죄율이 줄었다, 판결도 정확하다’라는 줄거리를 깔아두다가, 갑자기 머시가 최초의 무고한 사람을 사형한 날로 만들어 버린다. 그 과정도 머시의 계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의도적으로 증거를 지우고 조작한 결과로, 시스템이 잘못된 데이터를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일어난 비극이다. 즉, 머시가 갑자기 멍청해져서 오판한 게 아니라, 애초에 입력된 데이터와 그 데이터에 영향을 주는 권력의 손이 문제였던 거다.
영화 ‘노 머시’는 판사, 배심원, 사형 집행인까지 모두 AI로 대체된 세상에서, 형사 레이븐(크리스 프랫 분)은 아내 살해 혐의로 오직 데이터에 근거해 피의자의 유죄 확률을 계산하는 AI판사 매독스(레베카 퍼거슨 분)의 법정 의자에 묶인 채 눈을 뜨게 된다. AI판사 매독스는 방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크리스의 유죄 확률을 97.5%로 산출하며, 이를 92% 이하로 낮추지 못하면 즉각 처형이 집행된다고 경고한다. 레이븐은 사건 당시의 기억이 희미한 상태에서, 자신이 만든 시스템 앞에서 생존을 위해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온몸이 결박된 채 스스로 변호사가 돼 음성과 손가락만으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만 하는 처지다. 90분 이내에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사형이 집행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영화 속 사회는 AI 사법 체계를 통해 완벽하고 효율적 정의를 구현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데이터와 확률이라는 차가운 틀 안에 인간의 복잡한 삶과 감정을 가두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대량 실직과 경제난이 닥친 2029년 미국 LA에는 범죄가 넘쳐난다. 늘어나는 범죄율에 LA는 새로운 사법 체계 머시(Mercy)를 도입한다. 머시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판사가 돼 유무죄를 판단하고 사형을 집행하는 시스템이다. 무력한 사법 시스템에 환멸을 느낀 형사 레이븐은 오직 데이터로만 범죄를 판단하는 AI 사법 시스템 ‘머시’를 설계하고 결국 현실화시킨다. 범죄자를 쫓던 형사가, 아내 살해 혐의로 용의자가 된 것이다. 초 단위로 줄어드는 시간 속에서 레이븐은 폐쇄회로CCTV, 개인적으로 촬영한 휴대전화 영상 메신저, 각종 문서, 개인SNS, 통신기록, 위치정보, 금융·교통 데이터, 생체 데이터까지 뒤지지만, 모든 흔적은 오히려 그의 유죄 지수를 더욱 높여만 가고,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그는 억울함을 주장
하지만, 국가가 도입한 ‘AI 사법 시스템’과 냉철한 AI판사 매독스는 방대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빠르게 유죄 가능성을 계산해 배심원 대신 초고도 인공지능이 판결을 내리기 때문에 조금의 여유도 없다. 재판은 실시간 스트리밍 형식으로 진행되고, 방대한 데이터를 근거로 가장 확률이 높은 판단을 내리지만, 그 판단이 곧 정의인지에 대해서는 물음을 남긴다. 인간의 감정, 맥락, 우연성까지 완벽히 계산할 수 있는지? 기술은 오류가 없을지 몰라도, 정의란 단순한 확률 계산으로 완성될 수 있는지? AI 재판만이 완벽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인지? 우리 스스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다.
“무죄라면 증명해 보세요”라고 그녀가 말하며 영화가 시작되는데, 주인공 레이븐은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 중이었는데, 범행 직전에 폭력적 재발을 보였고 술집에서 싸움을 벌이는 등 정황으로 미뤄 보아 아내를 살해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레이븐은 누구보다도 이 AI법정 운영 방식을 잘 알고 있기에 모든 단서를 훑으면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 나가려고 하지만 여의찮고, 마지막에 반전이 일어난다.
천신만고 끝에 엉뚱한 방향에서 진범의 정체가 드러난다. 묶인 레이븐의 손발이 돼 도와주는 파트너였던 형사 재크 디알로(칼리 레이즈 분)가 등장하는데, 지나간 사건에서 재크의 실수가 이 결말까지 오게 된 동기가 된 것을 알게 된다. 레이븐의 아내 니콜(애나벨 월리스)을 살해한 진짜 범인은 니콜의 직장 동료이자 레이븐의 친구인 롬이었다
그는 사실 레이븐과 재크의 기소로 AI법정에서 처음으로 처형된 데이비드 웹의 친형이었고 무고하게 희생된 동생의 복수를 위해 레이븐의 집 지하실에 이틀 동안 숨어 있으면서까지 니콜을 살해하고 모든 죄를 레이븐에게 뒤집어씌운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레이븐이 누명을 벗기 위한 변론 과정에서 이 사실을 알아채자, 볼은 크리스의 딸 브릿을 납치한 뒤 폭발물이 담긴 트럭을 몰고 내달려 AI법정으로 향한다. 롭은 브릿을 볼모로 AI 법정을 폭파시키려 하지만 AI판사 매독스는 그의 동생 사건을 재 심리하는 척 시간을 끌고 그사이 크리스는 롭을 제압한다.
그리고 그 순간 형사 재크가 현장에 도착하고, 재크가 데이비드 웹을 기소하는 과정에서 그가 범인이 아닌 걸 알면서도 조작 수사를 했음이 밝혀진다. 그렇게 모든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고 다행히 누명을 벗은 크리스가 매독스와 함께 AI법정의 불완전성을 논의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 속 세계는 AI가 내리는 판결이 곧 ‘무결한 진리’라는 맹신 위에 세워진 사법 시스템이다. 그러나 인간이 무수한 실수를 거듭하며 성장을 이뤄내듯, AI 또한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이 세상에서 완벽한 정의를 독점할 수 있는 존재는 없으며, 시스템이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지 않을 때 정의는 언제든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AI 모두가 결코 완벽할 수 없는 존재임을 겸허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진정한 정의와 인간적 자비가 가능하다는 사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대 일수록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계의 무결함이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함을 포용하고 그 안에서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인간성 그 자체라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실수하지 않는다”라고 호언장담했던 AI판사가 점차 판단에 균열을 일으키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AI의 한계를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