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이제 상상이 아닌 현실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SNS 추천 알고리즘부터 자동화된 의사결정 시스템과 빠른 미디어 제작까지, 우리는 이미 수많은 선택을 AI 기술에 맡기며 살아가고 있다. 이 영화는 거기서 더 나아가, 현실에서도 진지하게 오가고 있는 AI 사법 시스템, 즉 감정도 맥락도 배제된 채 오직 수치와 확률, 개인의 데이터 기록만으로 유·무죄를 가르는 시스템이다.
제작진은 “머시는 빠르고 정확하지만, 그만큼 냉혹하다. 눈앞에 실제로 펼쳐질지도 모를 미래를 목표로 세계관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일상에서 AI 활용도가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AI 판사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어디선가 있을법한 미래의 이야기” AI가 판결을 내리는 미래 법정이라는 현실감 넘치는 파격적인 설정, 영화는 AI를 도입하면 정확한 판결과 진실 찾기가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점을 제시하면서, AI판사에 관한 생각을 환기시킨다. 챗GPT를 많이 사용하는 요즘, 머지않아 다가올지도 모를 미래라고 생각하니 허황되다는 생각보다는 기술 발전이 곧 정의의 완성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인간의 판단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왜 여전히 필요한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긴다.
영화는 위협으로부터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집마저 감시의 대상이 되는 사회, 또 평소 숨기고 싶었던 사소한 정보나 개인의 모든 데이터가 증거로 작동하는 시스템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리얼하게 포착한다. 시립 클라우드에 업로드된 도시 전역의 CCTV는 물론, 교통과 휴대전화 기록, 홈캠 영상, 온라인 계정 활동, 살해된 아내의 휴대전화까지, 레이븐의 사적인 영역은 완전히 붕괴되고, 그 영역이 보호받을 권리가 아닌 언제든 증거가 되고, 감시는 안전이 아닌 통제가 된다는 점이다.
이 영화 속에서 로스앤젤레스 시민은 끊임없는 비디오 감시를 받고 있다.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AI가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영화 속 설정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동시에,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된 사적 정보에 자유자재로 접근하는 AI 위력은 새삼 섬뜩하게 느껴진다. AI 판사는 주인공 체포로 이어지는 긴박한 사건을 몽타주 형식으로 보여주는데. 이 도시의 모든 정보 클라우드, 즉 카메라, 휴대전화, 데이터베이스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
노트북 데스크톱, 메신저, SNS, 검색창, 영상통화, 보디캠, CCTV 화면 등을 그대로 훔쳐보며, 관객이 인물과 동일한 시점을 공유하는 스크린라이프 기법에선 디지털 화면 자체가 하나의 서사 공간이 된다. 이 영화는 ‘스크린라이프’기법을 활용해 법정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스크린라이프는 모니터와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의 화면으로 영화 장면을 구성하는 기법이다.
이 기법을 활용해 법정 밖에서 펼쳐지는 범인 추적 과정에 관객은 동참하게 된다. 형사가 탐문하고 증거를 찾는 통상적 수사대신 AI가 각종 문서와 영상을 찾아 보여주는 식이다. 만능에 가까운 AI는 속도감을 높이는 대신,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은 생략함으로써 여러 문제가 손쉽게 해결된다는 인상을 준다. 한편으로는 조지 오웰의 ‘1984’소설을 보는 것 같이 내 사생활이 실시간으로 적나라하게 공개되는 것이 공포심을 자아낸다.
‘머시’는 완벽한 정의가 아니라 효율과 통제를 위해 설계된 시스템이라는 점, 인간의 감정적 실수를 제거한다는 명목이지만, 실은 빠른 판결과 높은 검거율을 통해 낮은 범죄율 성취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시스템이다. 그 숫자를 위해선, 애매한 사건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망설이는 행위 자체가 비용이 돼 버린다.
AI는 책임을 지지 않지만, 인간은 그 뒤에 숨을 수 있다는 점, 영화 속 정치인과 경찰 지휘부는 머시 뒤에 숨어 “시스템이 그렇게 판단했다”라면서 책임을 회피한다. 하지만 실제로 증거를 지우거나 방향을 틀어버리는 건 언제나 사람의 손이고, AI는 그 손이 던져준 입력값을 진실이라 믿고 계산할 뿐이다. 그래서 진짜 문제는 실수가 아니라, 책임의 주체가 누구냐? 사람도 실수하고, AI도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누가 그 실수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지고, 시스템을 멈출 수 있느냐? 인데, 이 영화가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건 “AI도 완벽하지 않아”가 아니라, “AI를 앞세워 인간이 책임을 회피할 때, 그 대가는 너무 쉽게 한 개인의 목숨으로 돌아온다”라는 불편한 현실에 더 가깝다.
요즘 우스갯 소리로 우리 사법부도 AI로 대체된다면 지금처럼 학연과 지연 등 정실에 좌우돼 판결이 뒤집어지는 결과는 없을 텐데, 하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AI판결이 만능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판결의 기준과 참고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AI는 데이터를 읽을 수 있지만, 사람의 맥락은 읽지 못한다. 그날 그 사람이 왜 그곳에 있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말하지 못한 사정이 무엇이었는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영화는 결국 정의는 데이터가 아니라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그리고 완벽한 시스템은 없고, 우리에게는 여전히 사람 판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또 이 영화는 고도로 발달한 기술 사회가 인간을 얼마나 쉽게 통제하고 파괴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시스템은 완벽해 보이지만, 결국 그것을 운영하는 인간의 욕망과 부패가 개입되는 순간 가장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주인공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쫓는 모습은, 아무리 차가운 기계적 통제 속에서도 인간의 의지와 정의는 굴복하지 않는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