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민론(豪民論)은 허균이 43살 유배중에 쓴 상호부부고의 11권에 나온다. 호민론은 허균의 민본적, 개혁적 정치사상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글이다.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것은 오직 백성 뿐이다. 백성이 두려운 것은 물과 불 ,호랑이, 표범보다도 더하다.(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 民之可畏 有甚於水火虎豹)"라고 하였다. 이는 단순히 백성을 존중하자는 말이 아니다. 통치자가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정치적 경고다. 허균는 백성을 세 부류로 나누었다.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으로 구분했다.
항민은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백성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고 법을 지키며 살아간다. 원민은 수탈과 억압에 분노하고 윗사람을 원망한다. 그러나 아직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호민은 현실의 부당함에 저항하고 변화를 행동으로 이끌 수 있는 백성이다. 허균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세 번째 호민이다. "호민은 푸줏간이나 장사하는 사람들 사이에 자취를 감추고 있으면서 속으로 다른 뜻을 품는다. 천지를 곁눈질하며 시대에 변고가 생기기를 기다렸다가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자가 호민이다. 호민은 크게 두려워할 만한 사람이다.(潛蹤屠販之中 陰蓄異心 僻倪天地間 幸時之有故 欲售其願者 豪民也 夫豪民者 大可畏也)"
허균은 호민이 나라의 틈을 엿보고 기회를 살피다가 농촌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한 번 크게 외친다고 묘사한다. 이것은 백성이 역사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매우 급진적인 사고다.
한 사람의 외침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마침내 집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수 있다고 보았다. 이 글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권력이 아니라 백성의 마음이다. "천하에 두려워할 것은 오직 백성뿐이다(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 이 표현은 지금도 상당히 놀라운 문장이다. 17세기 조선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점이 호민론을 시대에 앞선 민중·개혁 사상의 글로 평가한다. 여기에는 허균의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이 있다. 백성은 처음부터 저항하는 것이 아니다. 참고 또 참는다. 그러나 억압이 계속되고 불공정이 누적되면 불만은 원망으로 바뀐다. 원망이 공동의 의식으로 발전하고, 누군가가 그것을 행동으로 조직하면 역사의 흐름까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허균은 “호민은 크게 두려워할 만하다(夫豪民者 大可畏也)”고 했다.
이것은 단순한 반항의 예찬이 아니다. 오히려 권력자에게 보내는 경고다. 백성이 침묵한다고 해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을 지킨다고 해서 모든 정책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겉으로는 조용한 사회에도 불만과 억울함이 축적될 수 있다. 좋은 정치는 백성을 두려워하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서 ‘두려워한다’는 말은 백성을 무서워하거나 통치의 대상으로 겁내라는 뜻이 아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무겁게 듣고, 국민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지 말라는 뜻이다. 권력자가 국민을 두려워할 때 권력은 절제되고, 국민의 고통을 외면할 때 권력은 오만해진다. 그리고 결국 원한을 남기고 무너진다.
400여 년 전 허균이 던진 질문은 오늘에도 유효하다. 권력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기 위한 것이라면 국민의 원망은 쌓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권력이 국민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면 국민의 신뢰가 쌓인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침묵을 선택할 때 사회는 겉으로 평온해 보여도 내부에서는 병들어 간다.허균의 호민론은 바로 이 점을 경고한다. 병들어 가는 내부에는 호랑이 보다도 무서운 폭발력이 있다. 천하에서 두려워할 것은 오직 백성뿐이다는 말에는 권력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들어 있다. 권력은 강할 때보다 절제될 때 강하고, 국민을 억누를 때보다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때 오래간다.
허균이 던진 이 경고는 오늘의 정치인과 공직자, 지도자들에게도 그대로 되돌아온다. 백성을 두려워하라. 그리고 백성이 왜 원망하는지를 먼저 물어라.
그것이 허균이 호민론을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 남긴 오래된 미래의 경고다. 허균이 조선시대의 현실비판을 하면서 소설로 한 것이 홍길동전이며 논설로 한 것이 호민론이다. 홍길동전에는
탐관오리를 혼내고 부정축재자의 재물을 거두어 나누어 주는 통쾌한 스토리가 있다. 호민론은 칼과 불같은 론리로 민중의 뼈속을 파고드는 무서운 민본주의 논설을 전개한다. 허균은 1952년 선조 2년에 동인의 영수인 허엽의 서자로 태여난다. 26세에 문과 급제를 하고 여러 관직을 거치며 파직과 복직을 거듭한다.
적서차별 사회에 서얼의 멸시와 천대를 천재적 학문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유배생활을 했으며 사명대사와 가까이 지내고 반야심경을 좋아했다. 중국까지 가서 시문학 실력을 날리고 귀국하여 오직 학력과 실력으로 황해도도사를 역임하고 정2품 형조판서까지 올랐으나 50세가 되어 당쟁에 휘말려 역모죄로 사형을 당했다.400년 전 허균을 오늘 불러 온다면 물어 보고싶다. 민주주의 가면을 쓴 정치권력의 횡포가 물극에 도달했고, 생존을 말살하려는 사회적 권력인 기업과 단체, 대학과 종교의 만행이 극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찌하여 허균이 주장한 물, 불, 호랑이 같은 호민은 일어나지 않는가. 구세주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지쳤다. 그래서 호민을 기다린다. 이 시대의 호민은 지금 어디 있는가. 이 금수같은 권력들을 물어뜯기 위해 나설 때가 아닌가. 그리하여 원한으로 검게 탄 불판을 갈고, 흑역사를 바꾸어야 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