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TV 연속극 '야인시대' 마지막 회를 보았다. 해방 이후 자유당 정권과 4·19 민주혁명, 민주당 정부, 5·16 군사정변과 공화당 정권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김두한은 시대를 풍미한 협객이 였다.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자 종로의 주먹으로 이름을 떨친 그는 단순한 싸움꾼이 아니었다. 일제의 침략과 싸우고 권력의 부패와 맞서며 온갖 고난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인물이었다. 드라마의 마지막을 장식한 장면은 국회의사당 오물 투척 사건이다. 김두한은 국회에서 오물을 뿌리며 군사 독제와 부정부패를 규탄했다. 그 행동의 정치적 평가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독제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행동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공감을 일으킨다. 이후 감옥을 거쳐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장례 행렬을 끝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그의 삶을 보면서 말보다 행동이 얼마나 어려우며, 정의를 외치는 사람은 많지만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은 드물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지식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명나라 사상가 왕양명은 지행합일의 철학을 단호하게 제시했다.《전습록》에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면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知而不行 只是未知)" 이라고 했다. 지식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지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수십 년 학문을 연구하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강의하면서도 정작 불의 앞에서는 침묵하는 지식인에게 이보다 매서운 경고가 있을까. 중국 전국시대 조괄의 고사인 지상담병(紙上談兵)도 같은 교훈을 준다. 조괄은 병법을 책으로 익혀 말하는 데는 뛰어났지만 실제 전쟁에서는 경험과 실천이 부족해 조나라 군대를 패배로 이끌었다. 종이 위의 병법과 전쟁터의 현실은 달랐다. 이론만 앞세우는 지식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우리 나라 역사에도 말보다 행동으로 자신의 신념을 증명한 인물들이 있다. 조선의 남명 조식은 권력 앞에서 붓을 내려놓지 않은 선비였다. 그는 "안으로 자기를 밝게하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과감히 결단하는 것은 의다(內明者敬 外斷者의)" 라는 문자가 새겨진 경의검(敬의劍)을 늘 차고 다녔다. 1555년 단성현감에 제수되자 사직 상소를 올리면서 당시 정치의 부패와 왕실 외척의 폐단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의 상소는 임금과 권력자에게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는 아첨의 문장이 아니었다. 목숨과 벼슬을 계산하기보다 옳다고 믿는 것을 직언했다. 훗날 그의 제자들 가운데 곽재우를 비롯한 의병장이 나왔다. 스승의 학문과 실행이 제자의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지식과 행동의 일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안 의사는 여순 감옥에서 사형을 앞두고 여러 유묵을 남겼다.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見利思義 見危授命)"라는 자신의 강렬한 신념을 표현했다. 그는 교육운동과 계몽운동에 참여하다가 국권을 빼앗긴 조국을 위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체포되었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상적 논리 체계인 동양평화론을 주장했다. 그는 죽음 앞에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안중근에게 독립은 강연장에서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실천해야 할 가치였다.
우리 사회에는 정의를 말하고 민주주의를 말하며 개혁과 혁신을 외치는 지식인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조직의 부패에는 침묵하고, 권력의 부당함에는 눈을 감으며, 자신의 자리와 이익이 위태로워지면 원칙을 바꾼다. 강단에서는 용감하고 회의실에서는 비겁하며, 언론에서는 정의롭지만 현실에서는 기회주의적이다. 더욱 참담한 것은 피 흘리며 죽어간 사람들의 희생으로 얻은 자유와 민주주의, 그들이 남긴 명예와 권리를 자신의 출세와 기득권을 지키는 데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피흘리며 죽어간 희생자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배를 채우고, 민주주의의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책임은 외면한다. 남의 희생으로 얻은 자리를 자기 공로인 양 내세우는 지식인도 있다. 그들에게 역사의식과 양심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김두한은 주먹으로, 조식은 붓으로, 안중근은 목숨으로 자신의 신념을 증명했다. 오늘날 지식인에게 필요한 것은 주먹도 희생의 흉내도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한 원칙을 현실에서 지키는 용기다. 불의에 맞서고, 부당한 권력을 비판하며,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실천이다.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앉은뱅이 지식인은 부끄러운 시체다. 앉은뱅이 지식인은 살아 있어도 양심과 지성의 생명을 스스로 포기한 자들이다. 역사는 말 잘하는 사람의 연설문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무엇을 감수하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기억한다. 지식은 행동으로 완성되고 양심은 실천으로 증명된다.
김두한의 장례 행렬은 드라마 속에서 끝났지만, 우리 시대 지식인들의 행동을 묻는 역사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앉은뱅이 지식인들, 당신들이 앉아서 정의를 논하는 동안 누군가는 그 정의를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다. 앉은뱅이 지식인은 걷지 못하는 불구자, 책임 회피하는 비겁자, 양심 없는 비인간, 살아있으나 죽은자라는 비난을 받는다. 거울을 보자. 나는 어떠 한가. 말하는 사람인가 침묵하는 사람인가. 걸으며 사는가. 앉은뱅이로 사는가. 나는 자연인, 자유인이다. 나는 구경꾼, 여행객이라며 살다 가더라도 과연 후회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