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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가족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09.11 18:40 수정 2018.09.11 18:40

딴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라하여 알뜰살뜰 돌보지만, 필자는 29세 청년교사 시절(문경중교사)에 점촌 장날 집을 비어둔 새, 도둑(이웃집으로 추정)이 들어, 금반지(3돈)1개, 현금 9천원(당시 돼지고기 60근값), 야외전축·레코드판 10장을 몽땅 가져갔다. 옷은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다.
당시 우리 집은 어머니와 나, 단 두 식구였다. 그래서 나는 평일에는 늘 출근하고, 어머니 혼자 집을 지키시지만, 장보기라도 하게 되면 빈 집이 되기 일쑤였다.
경찰서에서 직장(문경중 교무실)으로 도둑이 든 걸 알려줘서 고마움을 느끼지만, 한 편으로는 우리 집을 노리는 도둑이 있다는 사실에 두렵고 끔찍했다. 도둑이 든 다음 날 점촌장에 가서, 방범용으로 강아지 한 마리를 사서 기른 것이, 올해 3월 19일 10시경 애견 차돌이가 가출, 실종하기까지, 개를 애완견이 아닌 경비견으로 만 47년 동안이나 길렀다.
집사람은 내가 방범용으로 개를 기르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고 살아온 것 같다. 개 대신 ‘CCTV'를 설치하자고 주장했다. 나는 15년 4개월이나 알뜰살뜰하게 보살핀 차돌이가 집을 나가 실종된 것을 못내 안타까워 했지만 집사람은 다시는 우리 집에 개를 들이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호언장담이다.
나도 양견이 좋아서 한게 아니라, 도둑으로부터 가정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실종된 차돌이 후일담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차돌이가 내 곁에 있을 때 정성을 다해 돌봐줘서, 차돌이에게 미안감은 없다. 노래말대로 있을 때 잘해준 것이다.
아내의 적극반대로 개 이야기는 입 밖에도 못 냈지만, 47년간 개에게 쏟은 사랑과 정성이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는 없었다. 차돌이는 흰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는 나름대로 준수한 개였다. 남의 개일망정 차돌이를 닮은 개가 있으면 좋으련만, 차돌이를 닮은 개는 눈 닦고 봐도 없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차돌이 빛깔을 닮은 고양이가 가끔 우리 집에 들리곤 했다. 고양이가 차돌이같이 보일 때도 있다. 애견 차돌이를 잃고 한 달이 지나고 나서, 가끔 들리는 차돌이 빛깔을 닮은 어미 고양이가 새끼 네 마리를 데리고 우리 집에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먹을 것을 챙겨주었지만, 어미 고양이는 경고음을 내면서 나를 쏘아보았다. 그렇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미 고양이에게 자극을 주지 않도록 사료와 물통과 특식으로 생선뼈와 밥을 비벼서 고양이 옆에 놓아주었다. 생선가시와 비벼준 밥은, 일단 어미 고양이가 시식(試食)을 잠깐하고, 새끼 고양이들을 불러 모아 먹게 했다. 새끼 고양이들이 안전하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어미 고양이는 사방을 경계했다. 새끼 고양이들이 밥그릇 옆에서 물러나자 비로소 밥찌거기를 맛있게 비웠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에게 하는 걸 보니 이 시대, 이 땅 어머니들이 어미 고양이의 새끼 기르는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면, 우리 인간세상의 가정도 가도(家道)가 바로 선 화목한 가정이 될 것 같다.
(2018년 8월 21일 11시 35분)

▲ 김 시 종 시인 /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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