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체연재 칼럼

고대(통일신라·고려·조선) 문경문학사(史)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10.25 20:02 수정 2018.10.25 20:02

김 시 종 시인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김 시 종 시인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1. 통일신라 말기
·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년~?)
신라말기의 학자·자 고운(孤雲)·해운 (海雲) 경주 최씨의 시조·당나라에 유학하여(도당 유학) 874년 (18세) 빈공과에 급제·879년 황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을 지어,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885년 귀국하여 외직을 지내다가 897년 ‘시무십여조’를 상소했고 아찬(차관급)이 됐다. 그 뒤 난세를 비관하여 관직을 내놓고 각지(가은 봉암사 백운대등)를 유랑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글씨와 문장에 뛰어나, 사산비문을 남겼는데 가은 봉암사 지증국사의 비도 최치원의 솜씨다.
저서에 ‘계원필경’과 상당수의 시작(詩作)과 문장들이 ‘고운집’에 정리되어 있다. 최치원은 신라 최고의 학자요 문장가다.

2. 고려시대
·이승휴(李承休)·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두타산 구동(삼척)에서 학문에 전력했다. 그 후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가서 문명(文名)을 떨치고 돌아와 우사간을 거쳐 전중어사가 되었으나 한동안 벼슬을 떠나 구동(삼척)의 용안당에서 ‘제왕웅기’를 저술했다. 제왕웅기는 단군신화를 실어 삼국유사와 더불어 소중한 사료로 유명하다. 동안거사 이승휴는 한 때 문경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보인다.
3. 조선시대
·고상안(高尙顔)(1553-1623)
조선 선조 때의 학자·자. 사물(思勿). 호 태촌(泰春)·본관 개성·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함창 현감 등)을 하다가 광해군 때 사퇴하고, 귀향하여 농사와 학문에 전념했다. 농가월령을 지었다.
저서에 ‘효빈잡기’, ‘태촌집’ 등이 있다. 충무공 이순신과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하여, 예조에서 직무교육을 받으면서 바로 옆에서 관찰하여 태촌집에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의 외모를 기술한 보배로운 기록을 남겨 유명하다.
국내에서 유일한 이순신 제독에 대한 기록이다.
·이재(李縡) (1680~1746) 조선 숙종- 영조 때의 학자·문신 자는 희경. 호 도암·한천 본관 우봉. 1702년 알성문과 급제. ‘검열’이 되고 찬집청 기사관을 겸하여, ‘단종실록’편찬에 참여했다. 1707년 문과중시에 급제·대사헌(종2품)에 올랐으나, 신임사화의 여파로 은퇴하고 설악산에 들어가 성리학 연구에 전념. 조선후기의 학계에 중추적 인물로 등장했다. 저서로는 ‘도암집’이 있으며, 많은 편저를 남겼다. 가은에 사는 친척(우봉 이씨 일가)을 자주 찾았으며, 가은 선유동 바위에 새겨진 ‘山高水長’이란 글씨가 이재선생의 수택(手澤)이라 전해지고 있다.                 
(2018. 10. 18)

 



저작권자 세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