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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안동의 전통사찰을 찾아서(10)

조덕수 기자 기자 입력 2019.04.02 15:28 수정 2019.04.02 15:28

학가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은 석탑사(石塔寺)

▲ 석탑사 전경
▲ 석탑사 전경

 

안동시내에서 5번 국도를 따라 소재지가 있는 옹천리(瓮泉里)까지는 약 23Km이다. 옹천은 마을의 북서쪽에 병풍같이 두른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을 모습이 마치 단지와 같이 생겼다 하여 옹천이라 불렀다. 옹천에서 5번 국도를 벗어나 영주시 장수면 조제리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약 10Km 가량 가면 옛날 아홉 집의 큰 부자가 살았다고 하여 구억이라는 마을이 있다. 거기까지는 아스팔트로 잘 포장된 2차선 도로가 이어지고 주변의 경치도 무척 아름답다. 그리고 도로 왼쪽 옆, 밭 가운데 자연석을 높이 쌓은 탑이 보이고 그 석탑 바로 뒤에 석탑사가 있다. 석탑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있다. <편집자 주>

 

◇ 석탑사(石塔寺)
안동시 북후면 산북로 260-14에 자리 잡고 있는 석탑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이다. 석탑사에 전하는 ‘학가산신흥암기(鶴駕山新興庵)’라는 현판을 통하여 예전에는 절 이름이 신흥암(新興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석탑사라는 이름은 절 입구에 세워진 특이한 모양의 안동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安東石塔里方壇形積石塔)으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안동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을 보면 석탑사가 아주 오래전부터 법등(法燈)을 이어 왔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석탑사는 학가산의 자락으로 둘러싸인 좁다란 계곡에 형성된 평지에 위치해 있다. 석탑사의 남쪽 넓은 터에 안동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이 자리 잡았으며, 안동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 북서쪽 모서리에서 20m 정도 거리에 석탑사가 있다. 석탑사에는 원통전과 산령각, 범종각, 그리고 요사가 비좁게 들어서 있으며 그 주위로 돌담이 쌓여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왼쪽에 바로 요사가 자리하며, 요사 오른쪽에 산신각이 있고, 산신각 오른쪽 앞으로 주전각인 원통전이 석탑을 바라보고 있다. 원통전 오른쪽에는 범종각이 있으며, 원통전 앞으로 축대를 쌓아 뜰을 조성하였다. 원통전 내에 ‘후불탱화’와 중수기(重修記)가 있다.
 
◇ 유래와 전설
석탑사는 681년(문무왕 1)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그에 관련된 정확한 문헌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전하는 말에 의하면 창건 무렵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미타전, 관음전, 시왕전, 청풍루, 요사 등의 전각이 즐비할 정도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였다고 한다. 석탑사에 전하는 ‘학가산신흥암기’라는 현판을 보면 조선 후기에 중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통전에서 나온 상량문에도 1790년에 해당하는 연호가 적혀 있어 원통전이 1790년에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62년 사찰로 등록하고, 1987년 요사를 확장하였으며, 1988년 10월 전통사찰로 등록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석탑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연석으로 축조된 석탑이 웅장한 규모로 자리 잡고 있다. 이 탑은 언제, 누가 축조하였는지 기록이 전하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석탑축조에 얽혀 있는 전설만 구전되고 있다. 학가산에는 신라시대의 능인도사가 10여 년간 수도한 능인굴이
 있는데 아무리 심한 가뭄이라도 맑은 석간

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안동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에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하는데,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옛날 영주 부석사 승려들은 능인(能仁)이란 사람이 신통술을 부려 자신들의 공양미를 훔쳐 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승려 3천 명은 능인을 죽이려고 각자 손에 돌 하나씩을 들고서 약 80㎞ 떨어져 있는 이곳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로 몰려왔다. 하지만 능인은 이를 미리 알아채고는 승려들을 꾸짖었다. 그러자 부석사 승려들은 들고 온 돌을 한쪽에 모아서 탑을 쌓았다고 한다.
다른 전설은 명인도사(明認道士)와 마고선녀(麻姑仙女)의 이야기이다. 명인도사와 마고선녀는 바위로 만든 집에 살면서 돌로 만든 신을 신고 돌로 만든 말을 타고 다녔다. 또 신통력으로 소백산을 왕래하면서 돌밥을 날라다 먹었는데, 안동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의 돌은 명인도사와 마고선녀가 남긴 흔적이라고 한다.
북서쪽 하천가에 위치한 석탑사의 배치를 나름대로 의미를 두고 보는 이들도 있다. 서울 석촌동의 피라미드는 큰 피라미드의 모서리에 작은 피라미드를 배치하고 있으며, 또한 의성 피라미드도 피라미드의 현 위치에서 북서쪽 근거리에 절 자리가 있었다. 이러한 배치는 고

구려·백제·신라의 전형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매우 독특한 가람 배치를 보여 주는데, 북서쪽 모서리에 배치되어 있는 석탑사는 석탑을 보좌(保佐)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 건축물의 구성과 배치
석탑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수령이 약 400년 정도 된 느티나무가 서 있고 그 옆에 자연석 석탑이 있다. 석탑에서 사찰까지는 3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길 왼쪽으로는 학가산에서 내려오는 차고 맑은 개울물이 사시사철 흐른다. 사찰주위에 민가는 없고 밭이 조금 있다. 사찰 경내는 약 200평 남짓이다. 사찰과 주변을 경계 짓는 울타리는 석탑 부재와 같은 종류의 자연석을 사용하여 120Cm 정도 높이로 쌓아올린 돌담이 쳐져 있다. 좁은 경내에 들어서면 요사채가 입구 쪽에 있으며 요사채와 나란히 원통전이 세워져있다. 원통전(圓通殿) 앞에는 작은 크기의 산신각이 동남향을 향해 세워져 있으며 원통전 앞에 범종각이 있다.
 ■ 원통전(圓通殿)
자연석을 이용한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작은 크기이다. 기단은 비가 올 경우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건물에 튀는 것을 막고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차단하며 건물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땅바닥보다 높게 쌓아올린 것으로 주로 돌과 벽돌을 이용한다. 주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며 기둥은 원주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에 풍판이 설치되어 있고 겹처마이다. 원통전의 전면 3칸은 간결한 짜임새로 결구되어 있고, 기둥의 높이가 전체적으로 낮아 안정감이 있다. 전면 3칸에는 띠살문을 달았다. 따라서 문을 열었을 경우 법당 전체가 개방되는 구조를 하고 있다.
 ■ 산신각(山神閣)
원통전과 요사 사이의 좁은 길을 가면 산신각이 있는데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아주 작은 건물이다. 산신각은 대정 8년(1920년)에 지은 건물이다. 내부에는 산신상을 모시지 않고 탱화를 모시고 있다. 이 불화도 산신각 건축 당시에 그린 것으로 보이고 많이 퇴락하여 뚜렷한 윤곽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흐릿하다. 산신각은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차단하고 통풍이 잘 될 수 있도록 땅바닥에서 20Cm 정도 띄워서 바닥을 깔았다. 바닥은 마룻바닥이고 지붕운 맞배지붕에 홑처마이다. 
■ 요사(遼舍)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자연석에 기둥을세웠다.  좌측 1칸은 부엌으로 반 칸의 크기는 툇마루를 깔았다. 1987년 칠석에 기존의 요사가 좁아서 뒤쪽에 시멘트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 범종각(梵鐘閣)
1982년 종각불사를 하여 범종을 걸었다. 종의 규격은 구경 43Cm, 높이 69Cm인 작은 크기이지만 소리는 밝고 은은하다.
 ■ 소장문화재
석탑사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43호로 지정된 안동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이 있다. 탑이 세워져 있는 곳의 지형은 평탄한 곳이다. 탑을 축조한 부재는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자연석을 사용하였다. 자연석의 크기는 작은 것은 주먹만 한 것에서부터 큰 것은 60-70Cm 정도의 길이다. 탑은 4면으로 되어 있으며 각 면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1층의 경우에는 12.8~13.2m 정도이며, 2층은 10.8~11.0m 정도, 3층은 7.7~8.2m 정도, 4층은 5.5~6.0m 정도, 5층은 2.0~2.6m 정도의 크기이다. 각층의 높이는 일정하지 않고 낮은 층은 70Cm 정도이고 높은 층은 110Cm 정도로 전체 높이는 약 600Cm이다. 이 석탑과 형태가 비슷한 석탑은 우리나라에 모두 3기가 현존한다. 나머지 2개는 의성군 안평면 석탑1리의 석탑과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있는 구형왕릉이다. 
 
◇ 수주 스님(주지)과의 만남
수주 스님은 “석탑사는 건물이 헐어져 재작년에 중수했으며 탑 주변을 정리정돈 했다. 대웅전에는 목불이 모셔져 있는데 소박하지만 단아하다”고 말했다.
관세음보살 부처, 탱화 3점을 분실했으나 아미타불 후불탱화 1점만 찾아서 지금은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외진 곳에 사찰이 있다 보니 수도시설도 안 되어 있어서 불편을 느끼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석탑사는 여느 사찰들과 다름없이 법 공양 등의 불교 행사를 주요 활동으로 하고 있으며 기도 도량으로 아늑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석탑사에 도차한 시간이 점심공양이 한참 지난 시간이었다.
눈매가 곱고 마음이 따스한 수주스님은 “점심공양을 못해 어떻게 하느냐.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드릴까요”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스님의 따스한 말 한 마디에 종일 피곤했던 심신이 모두 풀리는 것 같았다. 스님과의 아쉬운 만남을 뒤로 하고 귀로에 올랐다.   

조덕수 기자  duksoo1144@hanmail.net

▲ 방단형 적석탑
▲ 방단형 적석탑
▲ 원통전
▲ 원통전
▲ 산신각
▲ 산신각
▲ 요사채
▲ 요사채
▲ 범종각
▲ 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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