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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타인의 건강보험증 사용’은 범죄 행위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5.20 21:01 수정 2019.05.20 21:01

이 철 우 부장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주지사

병·의원에서 진료 시 건강보험증이나 신분증을 은밀하게 빌려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특히 정보주체의 개인정보가 자신도 모르게 유출되어, 타인이 자신 명의로 몰래 진료를 받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누구나 자신에게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심각하게 고민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건강보험제도에선 보험증이 없어도, 단순 자격확인(성명·주민번호 제시)만으로 본인 확인 없이 요양기관을 이용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개인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전자보험증 도입 여건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할 때, 건강보험증 대여나 도용에 의한 부정수급이 지인이나 친인척, 제3자 등에 의해 은밀하고 지능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단지 신고에 의한 수동적인 적발체계에 의존하여 밝혀낸 증대여·도용 부정수급 현황을 살펴보자.
2013년 823명(9억3,200만 원)에서 2017년에는 1371명(13억2,600만 원)으로 실질적 규모는 파악할 수 없고 적발규모는 미미한 상황임에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8년에는 보험증과 신분증 확인이 일부 강화되면서 적발 건수가 줄어들긴 했으나, 여전히 951명(12억8,700만 원)의 부정수급으로 인해 국민들이 낸 소중한 건강보험료의 재정 누수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안으로 요양기관에서 환자 본인 여부를 확인 후 진료하는 방안이 있지만, 의료기관의 본인 확인 의무규정이 삭제되면서 의료계는 ‘진료’가 본연의 업무이며, 본인 여부 확인은 공단의 행정업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국민 다수의 편익을 위한 제도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양태가, 영락없이 남의 집 대들보 위에 몰래 올라가서 훔치려는 양상군자(梁上君子)와 다를 바 없는 모양새이다.
보험료는 내지 않고 급여혜택만 받으려는 이기심 때문에, 다른 사람의 질병이 나의 진료기록으로 남고 생명보험 가입도 어려워진다.
결국 모든 가입자가 부담하는 건강보험료가 올라가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말 기준 건강보험 재정을 살펴보면, 1,778억 원의 당기적자를 기록하면서 향후 건강보험의 지속성에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다행히 누적수지는 그동안 쌓아온 누적적립금이 많아 20조 원 이상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재정지출 확대요인은 여전히 산적해 있다.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인한 노인진료비 급증, 산정특례 적용질환 확대(1월), 비뇨기·하복부 초음파 건강보험 적용(2월), 한방 추나요법 건강보험 적용(4월) 등 향후 건강보험 보장률을 70%대로 도달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급여확대 정책방안이다. 이는 그 어느 때보다 불필요하게 새고 있는 재정누수 요인을 파악하여 봉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란 것을 의미한다.
다행스럽게 올 7월부터는 입원진료 시 건강보험증 부정수급 방지 및 진료정보 왜곡을 방지하기 위한 ‘신분증 확인제도’가 실시된다. 증 부정수급이 확인되면 진료비(공단부담금)전액을 환수하게 되고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유튜브를 보면 국내외 크리에이터들이 한국의 건강보험제도에 대해 다양한 내용을 다루면서, 많은 외국인들이 감탄과 부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형 건강보험제도가 영구적으로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필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보험자는 보다 정밀한 재정관리에 역량을 투입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공급자인 의료계는 환자의 신분증 확인제도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건강보험제도의 삼각축을 유지하는 대다수 가입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증 도용이 ‘건강보험료 인상의 주범’이 되고 증 대여가 ‘당신의 질병정보가 바뀌는 것을 허락하는 행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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