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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일론 머스크의 예언에 대한 소고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6.07.26 06:54 수정 2026.07.26 06:54

전 경운대 겸임교수 반병목


전기자동차 테슬라, 화성 탐사여행을 추진하는 스페이스 엑스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미래 진실 10가지 예언을 얘기했다.

3년 안에 돈이 사라진다. 돈을 대체하거나 필요없게 만드는 세상으로 변한다는 말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AI 역활이다. 로봇에 의한 대량생산은 물가와 금리를 하락시킨다. 4년 전 쳇GPT는 변호사와 의사시험에 높은 점수로 합격했다. 시나리오를 썼고, 소설도 썼다. 특정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분야에 통용되는 만능지능인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범용 인공지능)’는 변호사, 회계사, 작가, 프로그래머를 대신하고, 시도 쓸 수 있을 것이란다. 2030년이 되면 AI지능이 인류지능의 총합을 넘어설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 뉴턴, 다빈치 등 세계 모든 인간의 지능을 합친 것보다 똑똑해 진다는 것이다. 그런 변화 속도는 인간이 100만 년 만에 이룩한 성과를 몇 년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 지능과 노동의 가치는 0이 돼 제품 가격에 미친다. 상품은 재료비와 전기료를 합친 비용으로 결정된다. 예를 들면 아침 빵집에서 살 수 있는 빵의 가격은 원료인 밀가루 값과 전기료를 합친 금액, 그리고 수송, 판매에 소요되는 비용 정도에 그친다는 말이다. 그리고 고급인력(판.검사, 변호사, 의사 등)양성에 드는 비용이 사라진다. AI는 그런 기술에 대한 복사가 가능해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래서 탈화폐화로 돈의 비중이 약화된다.

상품생산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나 구조적 디플레이션에 이른다. 자동차, 집값, 의료비가 저렴해진다. 가격붕괴로 저소득도 고소득의 효과를 누린다. 자율주행이 되면 택시, 버스비도 내린다. 노후개념이 사라져 은퇴를 위한 저축의 필요성이 줄어든다. 현재도 네플릭스, 스마트폰 등의 개발로 유사기능의 연관 종류의 산업들을 대체할 수 있게 됐다. 의료분야는 3~5년 후 로봇이 인간 최고의 기술을 초월할 것이다. 로봇 간 학습능력을 공유하고, 복제되며 극도의 정밀성을 갖기 때문이다. 2040년까지 인간보다 많은 100억대 이상의 로봇이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충고도 있었다. 지금은 삼성, 현대, 엘지 등 대기업에 의해 발전하고 있지만, 출산율 저하로 인구붕괴구간에 접어들었다. 현재의 인구가 유지되려면 여성 1인당 2.1명의 출산율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실은 0.72명으로 1/3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인간의 장수나 반 영생은 수명연장 프로그램 개발에 의해 가능할 것 같다. 그는 120~150정도의 장수가 좋으나 영생은 고통이라고 했다.

농담 섞인 진담, 그때는 북한군이 침입하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올 수 있다는 말이었다. 우리의 저출산, 고령화는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17년에 성인용 기저귀가 유아용보다 많이 팔렸다고 한다. 고령화는 국가 존속 문제다. 출산율을 높이거나 높은 이민자 유입인데 아닌 것 같고, 나머지 기대할 건 AI와 로봇, 수명연장에 의한 생존뿐이란다.

일론 머스크가 “앞으로 대부분 직업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고, AI와 로봇의 발전으로 인간의 노동은 더 이상 생존의 필수 조건이 아니게 될 수 있으며, 일은 선택의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기술 낙관론처럼 들리기도 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위협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이 말이 진정으로 불편한 이유는, 그것이 단지 직업의 미래를 말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인간이 오랫동안 붙들고 살아왔던 삶의 구조 자체를 흔들기 때문이다. 직업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루의 시간을 조직하는 틀이었고, 사회 안에서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였으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었다.

머스크의 전망이 기술적으로 일정 부분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분명하지만, 지금 이뤄지고 있는 AI기술 발전 속도로 보면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직업의 소멸보다는 기능적 면이 더 크다. 사회의 변화 속도, 인간의 저항 그리고 결국 인간에게 찾아 올 공허와 허무 등의 문제는 남은 숙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기능이 사라진 뒤에도, 인간은 여전히 필요한 존재인가?”다. 인간의 감정, 몸, 고통, 신념, 그리고 관계를 직접적으로 상대하는 일은 효율의 논리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다. 예술은 그 대표적 예다. AI는 음악을 만들 수 있고, 이미 훌륭한 그림과 텍스트를 생산한다. 그러나 예술의 핵심은 창작 기술이 아니라, 이 시대 감정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라는 판단에 있다. 체육 역시 마찬가지다. 기록과 분석은 자동화될 수 있지만, 스포츠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기록 때문이 아니다. 넘어질 수 있는 몸, 훈련의 시간, 노쇠함과 회복의 서사는 인간의 필멸성을 전제로 한다.

신학과 윤리, 철학과 종교의 영역은 더욱 분명하다. 이 영역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통과 죽음, 불의와 상실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AI는 질문에 답할 수는 있어도, 그 질문을 감당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유한성을 전제로 한 사유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교육과 돌봄, 치유의 영역 또한 마찬가지다. 이 일들의 핵심은 정보 전달이나 문제 해결이 아니라, 타인의 시간을 함께 견디는 태도에 있다. AI는 공감을 모방할 수는 있지만, 관계의 결과를 함께 살아낼 수는 없다. 인간은 여전히 인간을 필요로 한다. AI역시 인간의 사고를 확장한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에 있다.

그 한계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AI가 스스로 사고하기 시작할 때 인간이 위태로워지는 이유는,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서가 아니라 인간이 더 이상 사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효율의 부속품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질문을 통해 인간을 지키는 사람이 될 것인가.

세계 최고 통찰력을 가진 사람의 말이니 그건 아니다 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꿈같은 얘기여서 감이 잡히지 않는다. 실제로 집에서 쓰는 가전제품도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들의 지출은 더 늘어났었다. 물론 품질이 향상되고 사용이 더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지만, 먹거리가 값싸고 풍부하게 생산 돼 서민도 먹고사는 기초적인 일은 해결됐으면 좋겠다. 각자도생이라는 이 시대의 현실 속에서 AI가 발전함으로써 인건비가 배제돼 무한정한 상품이 저렴하게 생산된들 그게 일반인들에게 값싸게 제공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아무리 기계문명이 인간의 능력을 능가해서 편리해 진다 하더라도,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데까지는 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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