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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당 손처눌' 전쟁 뒤 교육을 세운 후에

김경태 기자 입력 2026.10.08 10:06 수정 2026.10.09 11:55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전쟁이 끝났다고 역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무너진 뒤 무엇을 다시 세우느냐가 진짜 역사다. 조선의 유학자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1553~1634)의 삶을 보면 이 말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그는 임진왜란 때 붓을 내려놓고 칼을 들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다시 칼을 내려놓고 책을 들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의병으로 나섰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교육과 학문으로 무너진 지역사회를 다시 일으켰다. 손처눌은 대구지역의 대표적 유학자로 한강 정구(鄭逑)의 문인이었다. 그는 학문을 단순히 과거에 급제하거나 벼슬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다. 자신을 닦고 사람을 바르게 하는 공부, 곧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중시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손처눌은 동생과 대구지역의 선비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공산의진군의 수성현 대장으로 활동하며 왜적에 맞섰다.평생 책을 가까이하던 선비가 전쟁터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나라만 황폐하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개인의 삶도 산산이 무너뜨렸다. 손처눌 역시 전쟁 중 부모를 잃었다. 나라를 지키는 일과 부모를 섬기는 일이 한꺼번에 그를 짓눌렀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부모를 영원히 사모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거처를 영모당(永慕堂)이라 이름 지었다. 그의 호인 모당에도 부모를 그리워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에게 효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었다.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근본적인 도리였다.

임진왜란이 남긴 상처는 깊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교육의 터전도 무너졌다. 서원과 향교가 제 기능을 잃었고, 지역의 학문과 문화도 크게 위축됐다. 손처눌은 전쟁이 끝난 뒤 또 다른 싸움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적과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무너진 정신과 교육을 다시 세우는 싸움이었다. 그는 지역 선비들과 함께 연경서원의 복설에 힘을 보태고 후학을 가르쳤다. 영모당에서도 학문을 강론하며 제자들을 길렀다. 여기에서 모당의 삶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가 나온다. 전쟁은 무기로 끝낼 수 있지만,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교육이다. 모당은 그 일을 위해 책을 읽고 교육을 시작했다.

손처눌의 삶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모당일기다. 그는 자신의 일상과 학문, 사람들과의 교류, 제례, 여행과 자연에 대한 생각 등을 꾸준히 기록했다. 역사책은 흔히 왕과 전쟁, 정치와 제도를 기록한다. 그러나 일기는 한 인간이 어떻게 하루를 살아 갔는지를 기록한다. 그래서 모당일기는 한 유학자의 개인 기록을 넘어 당시 대구지역 선비들의 생활과 학문, 인간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됐다. 모당은 거대한 사건만 기록하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기록했고, 산천을 만나면 자연을 노래했으며, 학문을 하면 자신의 생각을 남겼다. 나라, 부모, 학문, 사람, 자연. 그의 삶에는 이 다섯 가지가 함께 있었다.

모당의 삶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역할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의병이 됐다. 전쟁이 끝나자 교육자가 됐다.부모를 잃자 효를 실천하는 선비가 됐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기록해 후세에 남겼다. 오늘날 우리도 크고 작은 사회적 위기를 겪는다. 위기가 닥치면 우리는 흔히 누가 잘못했는지, 누구를 처벌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그러나 모당은 무너진 뒤 무엇을 다시 세울 것인가를 먼저 모색했다. 무너진 학교를 다시 세우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일은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한다. 모당은 임진왜란 이후 그 역할을 자처했다. 그래서 그는 단순히 임진왜란 때 의병에 참여한 유학자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그는 전쟁 뒤에 교육을 세우고, 상처 뒤에 공동체를 세운 선비였다. 마지막에는 자연과 후손을 생각했다.9 모당에게는 세속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을 바라보는 순간이 있었다. 그가 운문사를 찾아 아름다운 산천을 바라보며 읊은 시가 있다.

"우뚝 솟은 봉우리들은 그림 붓으로 그린 듯 빽빽하고, 들쭉날쭉한 구름과 나무들은 신선의 세계를 둘러싸고 있구나, 훗날 내가 증손들과 함께 잔치를 벌일 수 있다면, 난새를 타고 세속을 벗어나 선경을 마음껏 노닐리라. (崒嵂峯巒森畫筆/參差雲樹擁仙區 當年倘齒曾孫宴/ 贏得驂鸞物外遊)"

참으로 인상적인 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의병장, 학문을 닦았던 유학자, 후학을 가르쳤던 교육자가 마지막에 꿈꾼 것은 거창한 권력이나 부귀가 아니었다.

증손들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평범한 행복이었다. 이것이 모당이 평생 공부하고 실천한 끝에 도달한 삶의 최종 모습일지 모른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책임을 다하고, 사람이 어려울 때는 서로 돕고, 평화로울 때는 배우고 가르치며, 마지막에는 가족과 자연 속에서 삶을 누리는 것. 400여 년 전 모당 손처눌이 남긴 삶의 궤적은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 재산과 권력은 언젠가 사라진다. 그러나 사람을 살리고, 후학을 가르치고, 공동체를 다시 일으킨 정신은 오래 남는다. 전쟁 뒤에 책을 들었던 선비 모당 손처눌,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어쩌면 한 권의 책이나 한 편의 시가 아니라, 무너진 시대에도 다시 사람을 키우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모당은 난세의 고통 속에 사는 인간에게 무엇을 차지하고 누리겠다는 탐욕을 버리고 근본과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나의 가장 소박한 본래 신분은 가족의 일원이요, 자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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