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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용은 왜 굽이쳐 흐르는가

김경태 기자 입력 2026.10.28 13:15 수정 2026.10.28 13:19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경북 예천 비룡산 전망대에 오르면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진다. 내성천이 산자락을 따라 흐르다가 350도까지 마을을 거의 한 바퀴 감싸고 돌아나간다. 금빛 모래밭과 황금 들판, 겹겹이 이어지는 산줄기 사이로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용이 몸을 뒤틀며 돌아가는 듯한 이곳이 바로 회룡포(回龍浦)다. 강은 왜 곧장 흐르지 않고 굽이치는가. 인생은 왜 때로 지름길을 버리고 먼 길을 택해야 하는가. 회룡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묻는다.

용은 실재하는 동물이라기보다 동아시아인의 상상력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빚어낸 상징적 존재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비와 물은 생존을 좌우했다. 가뭄에는 비를 기원했고, 홍수 앞에서는 자연의 힘에 두려움을 느꼈다. 하늘과 물을 자유롭게 다스리는 용은 인간이 바라는 풍요와 안녕의 상징이었다.

중국의 고대 문헌인 역경(易經)의 건괘에는 용이 등장한다. 잠룡(潛龍)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력을, 비룡재천(飛龍在天)은 하늘을 나는 용의 형상을 통해 크게 펼쳐진 기운을 의미한다. 용은 단순한 상상의 동물을 넘어 성장과 도약, 권위와 변화를 나타내는 문화적 상징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용은 왕권과 수호, 풍요를 의미한다. 궁궐과 사찰의 장식에서 용을 볼 수 있고, 산과 강, 마을의 지명에도 용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용의 힘을 빌려 자연의 재앙을 막고 평안한 삶을 누리기를 소망했다. 회룡포의 한자 回龍浦는 돌아올 회, 용 룡, 물가 포를 쓴다. 용이 돌아가는 물가라는 뜻으로, 강물이 마을을 휘감는 모습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풀이된다. 회룡포의 지형은 실제 용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형상을 용에 빗댄 옛사람들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회룡포를 내려다보는 산은 비룡산(飛龍山)이다. 날아오르는 용이라는 이름은 강물의 굽이와 어우러져 풍경에 생동감을 더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산은 강을 감싸고, 강은 마을을 감싸며, 마을은 자연의 품에 안긴 듯하다.

예천에는 용문면과 용문사도 있다. 용문(龍門)은 글자 그대로 용의 문이라는 뜻이다. 중국의 고사성어 등용문(登龍門)은 잉어가 거센 물길을 거슬러 올라 용문을 뛰어넘으면 용이 된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출세와 도약의 관문을 뜻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이처럼 용은 돌아가는 물길에서는 자연의 형상을, 날아오르는 산에서는 도약을, 등용문의 고사에서는 성장과 성취를 상징한다. 자연의 지형에 인간의 꿈과 소망이 더해져 문화와 전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회룡포의 지형은 전통 풍수지리의 관점에서도 흥미롭다. 풍수에서는 산줄기의 흐름을 용맥(龍脈)이라 부르고, 산과 물의 형세를 살펴 사람이 살아갈 터를 해석했다. 산이 바람을 막아주고 물이 생활과 농경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한다는 경험적 지혜가 그 바탕에 있었다.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바람을 간직하고 물을 얻는다는 장풍득수(藏風得水)는 전통적인 이상적 입지의 개념이다. 산이 마을을 감싸고 물길이 부드럽게 돌아 흐르는 모습은 풍수적 명당의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그러나 특정 장소가 반드시 길지라는 판단은 전통적인 풍수 해석이며, 과학적으로 입증된 법칙은 아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좋은 터란 무엇인가. 자연재해의 위험이 적고, 물과 햇빛을 얻기 좋으며,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옛사람들이 말한 좋은 터의 의미를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되새길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이든 빠르고 곧게 가야 한다고 믿는다. 남보다 먼저 승진하고, 더 빨리 돈을 벌고,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성과를 내야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속도 경쟁을 더욱 부추기는 시대다. 그러나 인생은 고속도로가 이니다. 모든 길이 직선일 수 없고, 모든 문제가 정면 돌파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회룡포의 강물은 돌아간다고 해서 길을 잃은 것이 아니다. 산을 만나면 휘돌고 낮은 곳을 찾아 흐르며 마침내 더 큰 강으로 나아간다. 돌아가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 맞추어 목적지에 이르는 방식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옳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면 관계가 끊어질 수 있다. 한 걸음 물러서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고, 시간을 두고 해결책을 찾는 편이 오히려 목적에 가까울 때가 있다. 사회와 정치도 대화와 타협이라는 굽이길을 통해 더 오래가는 합의에 이를 수 있다. 물론 모든 우회가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원칙을 버리고 책임을 피하는 돌아감은 비겁함이다. 회룡포가 가르치는 것은 무조건 돌아가라는 뜻이 아니다. 방향을 잃지 않으면서 조건에 맞게 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회룡포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물은 오늘도 말없이 흐른다. 용처럼 돌아가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 산은 흐름을 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물길을 빚는 조건이 되고, 굽이는 길을 끊는 벽이 아니라 풍경을 완성하는 곡선이 된다.

인생에도 굽이가 있다. 실패와 좌절, 뜻밖의 만남과 피할 수 없는 이별이 그것이다. 굽이를 모두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사람이 현명하다. 곧게 가는 것이 언제나 빠른 길은 아니며, 돌아간다고 반드시 늦는 것도 아니다.

직선의 삶을 살다 일찍 끝나는 삶보다 곡선의 삶을 살며 끝장을 보고 가는 것이 좋을가. 그러나 그 곡선의 삶이 불의와 타협하고 양심을 팔아먹고 사는 비겁한 삶이라면 그 건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곧게 살다가 절명하는 사람보다. 어쩔수 없다며 기회를 보고 빌붙어 장수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할가. 세울 만한 대의가 있다면 세우고, 선명한 이성과 양심의 나침판을 보고, 곧게 나아갈 때와 돌아갈 때를 잘 판단해 부끄럽지 않게 나아 가야한다. 하늘 소리와 땅의 소리를 들으며 후회없는 나의 걸음을 죽을 때까지 걸어가야 한다. 말과 행동은 서로 싸운다. 머리와 가슴에 있는 뜻을 발에 집어넣기 쉽지않다.

꿈틀거리는 용이 굽이쳐 흐르는 회룡포 강물은 오늘도 파란만장의 비애와 희열, 전락과 비상의 한을 품고 미래를 향해 굽이치며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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